‘기억하다’라는 제목으로 여기 모인 5人의 작가들은 1960~70년대까지 인천의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옛모습을 보여주는 기억의 연금술사들이다. 근대사의 흐름과 밀접한 인천이라는 도시는 주변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개항기 가장 먼저 외국의 문물을 수용한 곳으로 근대식 공장부지, 차이나타운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개항의 물결이 급격히 항만의 특색을 변화시키며, 정미소, 상회, 근대식 은행, 철도 등이 들어서면서 인천이라는 공간의 스토리, 컨텍스트는 끊임없이 진화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색다른 레이어가 얹혀지고 그 간극이 큰 틈새로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간극과 틈새 사이에 사진가들의 기억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필름이 존재한다.
사진계의 거목인 주명덕은 60년대 소소한 풍경을 담담한 눈길로 바라본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조합하여 서민들의 이야기, 차이나타운 중국인들이 이루어가던 삶의 현장을 따스히 바라보거나 이국적 페이소스(Pathos)를 담았다. 정주하는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서쪽 바다풍경, 전쟁과 폭력의 잔해들을 피사체로 삼아 복잡다단한 역사의 모습을 지켜보고도 묵묵하기만 한 바다의 경건함을 카메라에 담는다. 작가는 흑백의 추상적 미감에 머물지 않고, 지나온 과거를 왜곡없이 충실하게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 강용석은 한국전쟁 중 공군 사격연습장으로 사용되던 매향리를 조명한바 있다. 이 장소는 50년가량 각종 오폭과 불발탄 사고가 잇따랐던 곳이다. 평화를 염원화는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염원이 이 공간에 새로운 컨텍스트를 덧입힌다. 작가는 동두천 기지촌의 미군 전용 술집,매향리라는 장소를 건조한 침묵 속에 바라보면서, 한국 내 미군 주둔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와 시대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한편으로 최광호, 김보섭 작가는 점점 소멸해가는 기억의 창고를 조명하는 작업을 한다. 최광호 작가는 인화지 위에 물체를 두고 빛과 그림자 만으로 사진을 만드는 포토그램으로 신체와 자연의 교감 순간을 포착하여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들을 만든다.『시간의 흔적』 을 통해 김보섭은 인천의 고락이 짙게 묻어나는 동구의 폐허가 된 공장들을 찍는다. 선경창고, 고려정미소의 낡은 벽돌과 지붕의 모습, 그 틈새의 햇빛까지 작품에 드러난다. 그는 근대화 이후 소진되듯 변화해온 인천의 변두리, 공장지역의 변화상을 30여년간 찍어왔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케익을 먹고 과거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어떤 작은 자극으로 다른 감각들이 함께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되살린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우리는 기억 속에서 무엇인가 찾아내곤 한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위험한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억은 팍팍한 현재의 삶에 대한 완화기제가 될 수 있고, 또 하나의 허무일 수도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이 전시를 통해 다난했던 인천의 역사와 함께 유명 사진작가들의 기억의 편린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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