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서 역사를 읽다
발효라는 과학적 지식 없이 본능과 경험으로 빚은 태초의 맥주부터 유럽 맥주 양조의 근간이 된 수도원 맥주,그리고 전 세계 라거 사랑의 근간이 된 맥주 순수령, 이와 대척점에 있는 크래프트 맥주의 부상까지. 맥주 한잔에 얽힌 역사를 찾아서.
시원한 맥주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다. 한강 그늘 아래 편 돗자리, 해가 어스름하게 저문 호프집 야장 같은 풍경이 머릿속에 덤으로 그려진다. 이때 이 ‘맥주 한잔’은 페일 라거일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로 에일 맥주를 마시게 될지라도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싶다”고 내뱉은 순간 떠올린 이미지는 페일 라거에 가까울 것이라는 말이다. 혹은 그보다 가벼운 라이트 라거이거나. 찌르르 목젖을 때리는 청량감, 머리까지 시원해지는 온도감, 홉의 쌉쌀한 풍미가 강조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풍미, 가벼운 목 넘김까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맥주의 전형적 특징이 곧 페일 라거의 특징이며, 오랜 시간 대다수 나라에서 소비율이 가장 높은 맥주 스타일과도 같다. 대표적인 브랜드를 이야기하면 더욱 수긍이 갈 것이다. 칼스버그, 오비 골든라거, 스텔라 아르투아, 하이네켄, 아사히, 칭타오. 그래서일까? 라거를 역사가 가장 오래된 맥주 스타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라거는 어쩐지 구식이고 에일 맥주는 어딘가 트렌디한 것처럼 소비되던 시절을 거치며 이 오해는 더욱 깊어진 듯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맥주의 원형은 에일이다.
맥주의 시작은 기원전 400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주에 필요한 보리 재배가 시작된 농경문화에서 출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수메르인이 처음 만들어 마셨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수메르인 유적지에서 맥주 양조법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연히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고, 보리를 빻아 빵으로 만들고 다시 물을 부어 곤죽처럼 만든 뒤 저장했다. 이 과정에서 공기 중의 효모를 먹이 삼아 발효가 이루어지며 술이 됐고(물론 수메르인이 효모와 발효의 개념을 알지 못했을 테지만), 침전물이 내려앉은 맑은 부분을 갈대로 이어 만든 빨대를 사용해 마셨다고 한다. 냉각장치가 있을 리 만무한 고대에 상온에서 발효가 이루어진 이 맥주를 굳이 분류하자면 상면 발효(18~23℃의 비교적 고온에서 발효하는 방식으로 효모가 상면에 떠오른다)로 만드는 에일 맥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맥주를 만든 이집트문명에서도 크게 사랑받았던 맥주는 그리스·로마문명을 맞아 갖은 홀대를 받기 시작했고, 포도 재배가 활발한 그리스에서는 2인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고대 영국인 브리튼에서는 벌꿀을 발효한 술 미드mead가 인기였는데, 워낙 고가였던 꿀 술에 보리를 섞어 발효한 술이 생겨났다. 이 혼합 술에 알루alu라는 이름이 붙었고, 나중에 에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맥주든 알루든 그리스 문화를 이어받은 로마에서도 와인은 지배 계층의 선택을 받은 반면, 맥주는 로마군과 대척점에 있던 게르만족의 본거지 위주로 성행하면서 미개한 야만인이 마시는 음료로 치부됐다. 심지어 알루에 대한 기록은 딱히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홀대받던 맥주의 부흥을 이끈 이들도 로마인이라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일명 ‘맥덕(맥주 덕후)’이었던 샤를마뉴 대제가 도약을 이끈 주인공이다. 정치적·군사적 이유로 로마 교황에게서 서로마 황제 칭호를 받은 샤를마뉴는 전쟁으로 얻은 영토마다 수도원을 세웠다. 기독교를 전파하고 마을마다 정치조직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생겨난 수도원에서 저마다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다. 샤를마뉴 황제는 수도원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맥주 제조 환경을 점검했다. 맥주를 마실 때마다 양조한 수도사를 대동했는데, 맛이 좋을 경우 큰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하니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한 수도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맥주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마 황제를 등에 업은 막강한 권력의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이후 세속 양조장으로 주도권이 전파되면서 산업적 맥주 양조가 융성해졌다. 유럽의 맥주 양조장 중 수도원에서 출발한 곳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양조장 바이엔슈테판Weihenstephan이 있다. 725년에 성 코르비니안과 수도사들이 양조를 시작한 것을 기원으로 하는데, 1804년 바이에른 왕국의 국립 맥주 회사로 편입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도원 레시피와 장인 정신을 고수하며 벨기에 레페Le! e, 독일 파울라너Paulaner 등과 함께 수도원 기반 맥주의 이미지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한편 기업에 귀속되지 않고 오로지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도 있다. 상업화된 맥주에 무분별하게 트라피스트라는 문구가 사용되는 것이 노여웠던지 수도원들이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를 조직하고 인증 조건을 확립한 것이다.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증받기 위한 조건은 이렇다. 수도원 담장 안에서 수도사의 감독 아래 양조될 것, 이익 창출이 아닌 수도사의 생활과 수도원 유지 비용에 그치며 그 외 수익은 사회에 환원할 것, 맥주 양조는 수도사의 부차적 행위에 불과하며 수도원의 주 사업이 아닐 것, 맥주 양조부터 판매에 관련된 모든 방침을 오직 수도원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
이와 같이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트라피스트 맥주는 전 세계 단 10개뿐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과 기도로 빚어낸 산물이라는 점은 이 맥주를 신성하게 여기게 했고, 희소해서 더 마셔보고 싶은 비밀의 맥주로 이름을 알리며 맥주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뭇 설레게 하고 있다.
한지금까지 언급한 고대와 중세 맥주 양조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야생 허브와 각종 향신료가 빈번히 사용됐다. 지역별로 특색 있는 맥주를 만들어낸다는 매력이 있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검증되지 않은 독성 식물도 무분별하게 사용해 생명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야생 허브의 하나였던 홉이 안전성과 맛의 탁월성을 인정받으면서 지금처럼 맥주 양조의 핵심 재료로 자리 잡게 된 것. 1516년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맥주 순수령을 제정했다. 당시 맥주 순수령으로 맥주 재료를 제한함에 따라 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다양했다. 유독한 재료 사용에 대한 위험, 빵의 주재료인 밀 보존과 가격 유지, 맥주 재료와 관련한 무역 통제 등이었다. 물, 맥아, 홉만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맥주 순수령은 지금의 독일 맥주 스타일을 확립한 근간이다. 이후 독일 맥주 순수령을 따르며 독일식 라거 맥주를 생산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분화되면서 다양한 맥주 양조 방식이 이어져왔다. 밀 재배가 활발한 유럽에서는 밀 맥주를, 북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를, 아시아권에서는 쌀을 사용하는 등 각국의 곡식 사정에 따라 다양한 곡물이 맥주 재료가 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허브, 과일 등 로컬의 다양한 재료를 추가한 맥주가 개발되고 발전해왔다. 크래프트 맥주가 태동한 것도 바로 이 다양성을 향한 목마름 때문이다.
수도원 맥주의 성행에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고, 독일 스타일의 라거 맥주가 전 세계로 퍼진 데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 같은 법령이 힘을 발휘했듯 맥주 양조 스타일의 변화에는 국가별, 시대별 배경이 작용했다. 흔히 수제 맥주라 일컬어지는 크래프트 맥주도 예외는 아니다. 크래프트 맥주 붐의 근거지인 미국에는 현재 9천4백여 개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있다(출처 Ibis World). 불과 50여 년 만에 벌어진 현상임을 감안하면 압도적 숫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흥의 배경에는 과거 미국 주류 산업의 암흑기라 불리는 금주법(1919~1933년)이 있다. 알코올 0.5% 미만의 무알코올에 가까운 음료를 생산하며 근근이 살아남은 양조장들은 금주법이 폐지되자 다시금 양조 역사를 이어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또 한번 좌초를 겪었고, 금주법 이전 1천3백45개에 달했던 양조장은 1970년대 말 89개까지 움츠러들었다. 그마저도 자본력이 있는 대규모 양조장들이 원가절감에 유리하고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용이한 라이트 라거만 생산하며 소비자는 선택권을 박탈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난세에는 영웅이 있다고 했던가. 유럽에서 이미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체험한 일부 미국인이 알음알음 홈 브루잉을 시작했고,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홈 브루잉을 합법화하고 소규모 양조장 법을 통과시켰을 때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크래프트 맥주 강국으로서의 태동을 이끌었다. 암흑기 동안 마셔온 라거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강렬한 풍미의 IPA, 스타우트, 포터 등의 맥주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크래프트 맥주를 정의하는 데 있어 미국 양조가 협회는 강제성은 없지만 세 가지를 덕목으로 한다. 연간 생산량이 10억 리터 이하로 소규모일 것, 새로운 스타일에 자유롭지만 물·맥아·홉·효모 등 기본 맥주 재료로 발효를 거치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양조장 지분의 25% 이상이 크래프트 맥주와 관계없는 업계 종사자나 제3의 인물에 의해 귀속되지 않고 독립적일 것. 이러한 크래프트 맥주 정신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 맥주 시장에 새로운 다양성을 전파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4년 소규모 양조장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미국 크래프트 맥주 붐을 이어받았다. 물 한잔도 골라 마시는 다양성의 시대에 작은 규모라 오히려 다채로운 변신이 가능했던 소규모 양조장들은 천차만별 맥주 애호가들의 취향을 하나하나 만족시키며 성장해왔다. 양조장이 자리한 지역의 청정한 물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방아, 오미자, 소금 등 지역 특유의 특색 있는 재료를 활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맛으로 맥주 콘텐츠를 꽃피워온 것이다. 가나다라 브루어리의 ‘가들 오미자 에일’, 바네하임의 ‘도담도담’, 안동맥주의 ‘석복’ 등을 그 예로 제시할 수 있다. 석복의 경우,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사랑받는 채소인 방앗잎을 주재료로 한다. 특히 시원한 민트 향을 연상케 하는 방앗잎 향, 10년 묵은 간장에서 얻은 소금 결정 ‘석장’의 달큼한 짠맛, 찹쌀 등 한국적 식재료의 조화로 감칠맛을 낸다. 이처럼 국내 크래프트 비어 시장에는 ‘더욱 맛있는’ 맥주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제품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