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배(John Pai, 1937- )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11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후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과 조각을 공부했다. 졸업 후 프랫의 최연소 교수가 돼 정년까지 재임한 뒤 2001년 퇴직해 명예교수로 있다. 현재는 코네티컷 주에 거주하면서 뉴욕을 중심으로 한국 등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존 배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라 동양적인 감수성과 서구의 추상미술이 어우러진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지만 동양적 정서가 짙게 담긴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리고 동양적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였고 공간에 선을 이용한 작업을 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재료는 철사다.
“선이 좋아 철사작업을 계속합니다.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그런 선 말입니다. 하나의 선 위에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처럼 저 많은 선들 속에 이야기들이 소근거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1950년대와 60년대 뉴욕의 다양한 미술활동을 접한 존 배는 용접조각 작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였다. 그는 철사를 꼬고 비틀고 연결해서 둥근 원이나 정육면체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구름 같은 반추상의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수없이 많은 철사를 겹쳐서 용접을 하는데 여러 개의 선은 하나의 면이 되고 덩어리가 된다.
<기억의 강>은 후자의 방법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여러 개의 철사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용접해서 고정시켜 만든 것이다. 마치 하나 하나의 세포들이 반복되면서 유기적 조직체를 형성해 가듯이, 그의 작품은 철사를 수많은 반복작업으로 용접한 후에 비로소 하나의 구조체로 창조된다. 용접이라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통해 자연과의 관계, 과거와 미래의 시간, 신화와 현실이 뒤엉킨 무의식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금속선을 촘촘하게 용접하는 과정에 구부리고, 누르고, 비틀고, 돌리면서 압력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 축적되어 있는 기억을 불러내려 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