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영화로 떠나는 여행
“끊겼던 관계를 회복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깨달음을 얻자.”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의 첫째 프란시스가 이제 막 떠난 열차 안에서 형제들에게 제안한 약속. 가장 들뜨고, 즐겁고 싶은 홀리데이 동안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새해의 다짐과도 같다.
〈전망 좋은 방〉(1985)
휴가철을 앞두고 여행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무렵, 도쿄에서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도쿄 오지 마. 한국 사람밖에 없어. 한국이 임진왜란복수극을 펼치고 있어.” 유럽에 간 친구도 문자를 보냈다. “물가가 너무 올랐어. 그리고 한국 사람 너무 많아.” 그들의 문자는 딱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안정을 찾으면 나가리라 결심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대 젊은 날의 여행은 진정으로 즐거웠다. 어딜 가도 처음이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가르침이자 배움이고 처음으로 보는 모든 것이 값졌다. 30대 여행도 나쁘진 않았다. 이제 처음 가는 곳은 별로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그것만 수십 번 반복해서 듣는 버릇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장소에 계속 가게 된다. 여행하는 감각도 조금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올해 연말 마음껏 쉴 수 있는 홀리데이 휴가를 앞두고, 비행기 티켓보다 홀리데이의 의미를 전할 수 있는 영화 리스트를 다시 검색한 이유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긍정하다
사실 이건 여행이라는 행위에 조금 질린 탓도 있다. 젊은 날의 여행과는 달리 40대의 여행은 하나같이 지루했다. 어떤 장소를 가도 처음 여행 갔을 때의 호기심과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다. 배울 것을 찾기보다는 싫은 것을 기어이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 증거였다. 나는 그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대체 뭐가 여행을 지루하게 만든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이가 들어 오만해졌기 때문이다. 더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교만한 중년 아재가 된 탓이다. 여행에서의 우정, 여행에서의 로맨스, 여행을 통해 맞닥뜨리고 경험한 모든 것이 그저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지나치게 빨리 단정 지어버렸다. 가만 생각해 보면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인생의 단맛뿐 아니라 쓴맛까지도.
영화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한 사람이 여행하는 방식은 그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사람들은 인생의 꽤 많은 중요한 결정을 여행지에서 내리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렸던 이별 결심 같은 것 말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2004)도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마일즈(폴 지아마티)는 이혼 후 후유증을 겪고 있는 데다 책 출간도 어려워진 과체중 작가다. 그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와이너리 지역으로 주말 여행을 떠나 여러 소소한 사건을 겪는다. 마일즈의 인생은 나와 아주 판박이다. 사람이 중년이 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누구는 결혼해서 애도 있고 누구는 강남에 아파트도 샀다는데 나는 혼자 고양이와 살고 있네? 이런 고민을 시작한다. <사이드웨이>는 나나 마일즈와 비슷한 생각에 빠져 있는, 와인을 좋아하는 중년들에게 말한다. 좋은 곳에 여행 가서 피노 누아 한 병 마시고 한숨 푹 자면 될 거야. 인생 뭐 별거 있나.
내면의 힘을 알게 되는 시간
그런가하면 <전망 좋은 방>(1985)은 여행 중 사랑에 빠진 이야기의 압도적 고전 중 하나다. 아, 물론 이 영화는 여행 영화 장르에서도 하나의 인기 있는 비공식 서브 장르에 속해 있다. ‘이탈리아 여행 영화’라는 장르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 사람들은 대부분 이탈리아로 간다. 그들에게 이탈리아는 적당히 이국적이고 기겁하게 로맨틱한 여행지의 어떤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듯하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아이보리의 우아한 사극 <전망 좋은 방>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한참 연상의 사촌 언니와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 루시(헬레나 본햄 카터)가 열성적인 몽상가 청년 조지(줄리언 샌즈)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영화의 매력은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삼각관계의 줄거리보다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루시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정확히는 루시가 자신이 원하는 것과 감정을 찾게 되는 엔딩에서. 자신을 예술 작품처럼 소유하는 행위가 그저 좋을 뿐인,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세실과 한없이 로맨틱하고 몽상적인 조지. 두 남주인공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루시는 세실과 이별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세실은 단호한 루시를 보내주며 “내가 몰랐던 (당신의)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는 말을 남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그러하듯, 여행에서 얻은 인연 또한 내면의 목소리를 일깨워준다. <전망 좋은 방>은 이탈리아 여행에 대해 당신이 꿈꾸는 판타지의 출발이다.
〈사이드웨이〉(2004)
관계를 돌아보며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여행은 기차 여행이었다. 러시아로 떠난 이별 여행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구간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밤 기차였다. 그래서 중년의 첫 여행도 <다즐링 주식회사> (2007)의 다즐링 구간으로 결정했다. 웨스 앤더슨의 <다즐링 주식회사>야말로 관계 회복을 말하기 좋은 영화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이 영화는 끊긴 관계에서 연약한 힘으로 다시 소생될 듯 말 듯한 관계의 접점을 보여주어 줄거리와 관계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그리고 ‘회복’에 집착하지 않는다. 형제애 따위는 잊은 지 오래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며 삶의 고충을 짐처럼 하나씩 짊어진 세 형제가 함께 다즐링 급행열차에 올라탄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하려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갖가지 좌충우돌과 해프닝을 겪으며 히말라야에 도착한 세 형제는 수녀로 살아가던 엄마를 만난다. 열차 안에서 세상을 떠난 아빠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세 형제 중 아빠가 누굴 가장 좋아했는지로 소소한 논쟁을 벌이는, 아빠의 빈자리를 이렇게 저렇게 되뇌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세 아들에게 엄마는 담대히 말한다. “해줄 말이 없어.” 그리고 아들들을 위한 아침상만 차려놓은 채 홀연히 어딘가로 떠난다. 세 형제는 아빠를 잃었고, 이 소식을 전하려 떠난 여행길에서 갖가지 해프닝을 겪으며(열차에서도 쫓겨난다) 형제애를 회복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상봉한 엄마는 이들을 담담하게 환대해주지만, 그간의 분리의 시간을 보상하듯 앞으로 함께할 거라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관계의 끝이 꼭 회복이 아니란 것을.
다즐링 구간을 찾아보니 영화 속 노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역시 웨스 앤더슨의 판타지면 어떤가. 그 대신 홍차 수송을 위한 ‘다즐링 히말라야 철도’라는 산악철도가 하나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나는 홍차를 좋아한다. 중년의 엉덩이로 버티기엔 오랜 시간이니 특실을 끊어야겠다. 특실을 끊으면 홍차는 서비스로 주는 걸까.
사적인 동시에 만연한 외로움
그러나 이니셰린이라는 섬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밴시 유령이 곧 죽을 사람의 피 묻은 옷을 빨고 비명을 질러 죽음을 예언하는 동네일 뿐이다. 맥코믹 부인은 이 밴시 유령의 현현으로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섬 주민이다. 그녀의 예언대로 2개의 죽음은 이윽고 섬에 당도한다. 시오반도 육지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위해 파우릭 곁을 떠나고, 사랑을 주던 당나귀 제니도 죽고, 도미닉도 자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일로 호수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시오반에게 슬퍼지니까 슬픈 책을 보지 말라고 하던 파우릭은 한없는 외로움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