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알렉산더 레비(Henri Alexander Levy)는 회화, 영상, 의복, 아상블라주 등 서로 다른 매체의 작업이 ‘문화적 소외와 상징적 통제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수렴하던 시기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는 아상블라주에 나타나는 신추상표현주의적 어법을 다시 호출하며 청소년기의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선과 흔적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의 과거와 성장 과정에서 접했던 사회를 되짚는다. 전통적인 위계와 제도적 인정의 바깥에서 작업해온 레비는 범죄성, 지워짐, 방치의 흔적을 품은 사회 주변부의 물건과 재료를 가져와, 감상주의를 배제한 냉정한 시선으로 새로운 맥락에 놓는다.
종이와 캔버스 작업에는 도식과 스캔 이미지, 잉크와 아크릴이 사용되며 작가는 이를 통해 고통과 단절의 감각을 마치 임상적인 태도로 측정하듯 다루고 정서적 소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레비는 이러한 상태를 ‘반응하지 않는 영아’의 심리적 순환에 빗댄다. 그가 제시하는 순환 속에서 정서적 단절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어머니의 불안을 키우며, 그 불안은 위축된 반응으로, 다시 무반응으로 이어진다. 잉크와 아크릴, 종이와 담배, 피와 커피, 차 등 이질적인 재료들은 수치심과 판단, 회피와 발견을 한데 얽으며 이 반복적인 심리의 파동을 환기한다. 고통과 중독, 예속과 혼란, 알 수 없음이 계속될 것이라는 체념 속에서 그의 작업은 희망과 지옥 같은 현실의 수용 사이를 오간다. 레비는 어쩌면 바로 그 경계에서 구원과 고유성이 생겨난다고 본다.
전시 공간은 감정을 밀폐하고 압축하는 ‘오토클레이브 ’처럼 작동하며, 본래의 맥락에서 떼어내진 재료들의 낯섦을 공간 전체로 확장한다. 제한된 색채와 기능적인 선, 그리고 광택을 내고 벗겨내고 뒤집고 비우고 덧칠한 표면들은 관람자를 친절히 초대하기보다 하나의 닫힌 체계이자 장벽으로 다가온다. 레비의 작업은 매체를 막론하고 일관된 태도를 드러낸다. 레비에게 진정성은 타협과 공존할 수 없고, 럭셔리와 실용성은 서로 배타적이고, 진정한 표현은 상업적 시스템과 일정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한눈에 쉽게 읽히는 예술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해독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바로 그 지연을 통해 동시대 문화의 빠른 소비 논리와 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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