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인상은 첫 페이지를 열기 전에 이미 정해질지도 모릅니다. 수백 페이지에 걸친 내용을 함축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표지 그림은, 우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이의 상상 또한 표지의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표지 그림이 책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바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매력적인 표지로 장식된 책들은 지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느새 우리의 집 한켠을 차지합니다. 때로는 다른 책들을 밀어내고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하기도 하지요. 표지가 없다면, 책은 과연 어떻게 우리를 유혹할 수 있었을까요?
광주신세계갤러리는 책의 표지를 장식해 온 여섯 명의 작가를 초대한 기획전 《책의 얼굴들》을 개최합니다. 기묘 작가의 사물들은 서점의 수많은 책 사이에서도 은은한 빛을 발하고, 식물로 가득한 사유의 공간을 그려온 김민주 작가의 그림은 책에 또 다른 생명을 더합니다. 안소현 작가의 고요한 순간들은 다양한 도서의 표지를 통해 책이 놓인 공간의 공기를 변화시키며, 물감과 태피스트리, 디지털 매체를 오가는 윤연우 작가의 작업 세계는 출판물로도 확장됩니다. 박정민 배우가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의 첫 베스트셀러의 얼굴이 된 장띵 작가의 일러스트와, 인쇄된 출판물에서도 만져질 듯한 색연필의 매력을 전하는 KATH 작가의 작업 역시 놓칠 수 없습니다. 《책의 얼굴들》은 작가들의 원화와 그 작품이 녹아든 책을 함께 전시하여, 책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던 작품의 매력과, 출판 규격을 지키면서도 작품의 맛을 살리고자 한 출판 디자인의 묘미를 한 자리에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글과 그림. 가까운 듯 멀고, 다른 듯 닮은 두 매체는 책이라는 무대 위에서 만납니다. 그 무대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깊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표지를 채운 그림은 일상 속 가장 따뜻한 쉼터이자, 가장 치열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사유의 장으로 여러분을 인도합니다. 이번 전시에 함께하는 광주의 독립서점 ‘책과생활’은 그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만물이 깨어나는 계절,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는 봄에는 도서관의 날과 세계 책의 날도 함께 찾아옵니다. 지금이야말로 책을 펼치고, 감각과 사유를 깨울 적기가 아닐까요. 책의 얼굴들을 천천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기다려온 바로 그 책과 그림을 만날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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