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 좋은 와인처럼, 보르도
‘리틀 파리’로 불릴 만큼 중세 도시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지닌 보르도.
보르도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와이너리 또한 변치 않는 향을 발산한다.
와이너리의 비옥한 땅을 밟으며 감각한 보르도의 다층적 매력에 대하여.
writer Jeong Ajin 콘텐츠 기획자 editor Kim Minhyung
보르도의 다층적 인사이트가 담긴 와이너리
신세계 VIP 투어는 역사와 인문학에 깊은 인사이트를 갖춘 송동훈 작가와 함께 기획한 ‘그랜드 투어’를 선보인다. 유럽의 명망 있는 가문 자제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기 전 세상을 배우면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떠난 여행 ‘그랜드 투어’에서 이름을 따온 만큼, 다른 투어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가볼 수
없는 특별한 장소 선정과 역사·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이 특징이다. 이번 투어의 목적지는 프랑스 보르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보르도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대표 와인 산지로,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미식 문화가 발달했다. 드넓은 포도밭과 유서 깊은 역사적 건물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언제 어디서든 훌륭한 와인 한 잔과 그에 잘 어울리는 안주의 마리아주를 커피보다 흔히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와인 산지 이면에는 유서 깊은 상업도시의 고도로 숙련된 영민함, 전통과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자부심과 권위가 자리한다.
보르도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항구를 통해 그리스, 스페인, 지중해 국가와 활발히 무역을 하면서 프랑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12세기 무렵에는 보르도가 와인과 무역만으로 벌어들이는 세금이 한 국가의 전체 세금보다 많을 정도였다고. 그렇기 때문에 12세기,
보르도가 속한 아키텐 공국이 영국 영토로 넘어간 것이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치열한 영토 싸움인 백년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그랜드 투어에서 보르도를 주목한 것 또한 농업부터 상업, 무역업, 관광업까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레이어를 쌓으며 성장한 도시의 다채로운 문화와 인사이트를 볼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라는 복잡다단한 농업에 엄격한 체계와 법규를 적용해 각기 다른 개성을 지키면서도 품질은 일정하게 유지해 ‘수준 높고 신뢰할 수 있는 고급 와인을 만드는 지역’이라는 브랜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이번 여행은 이런 보르도와 주변 지역에서 자연과 미식,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구성했다. 그중에서 특별한 주요 장소를 엄선해 소개한다.
1. 유럽 최대 굴 생산지로 알려진 아르카숑에는 미쉐린 레스토랑부터 펍까지 굴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이 많다.
2. 항구의 낭만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아르카숑 마리나.
3. 바다와 사막, 숲이 공존하는 절경의 뒨 뒤 필라.
신비한 휴양지, 아르카숑과 뒨 뒤 필라
보르도에 도착한 첫날, 차를 타고 근교로 나가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1863년 나폴레옹 3세가 잠시 머문 뒤 휴양지로 이름을 알린 아르카숑. 이곳은 1857년 나폴레옹 3세의 칙령으로 생겨난 도시다. 이후 부유한 은행가이자 철도 회사 경영주였던 에밀과 이삭 페레르(E´mile&Isaac Pe´reire) 형제는 보르도와 라테 스트La Teste를 이어주던 철도를 아르카숑까지 연장했고, 이로 인해 교통이 원활해진 아르카숑에는 호텔, 온천, 명품관, 카지노 등 다양한 시설이 속속 들어서며 유명 휴양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해수나 온천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요양하기 위해 기후가 온화한 아르카숑을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아르카숑은 지중해 연안의 화려한 휴양지에 비해 조금 더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이 강해서, 그 매력을 아는 사람들만 찾는 비밀스러운 휴양지다. 총 7km에 달하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해변을 둘러싼 소나무 숲으로 이뤄진 아르카숑만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자연환경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뒨 뒤 필라 Dune du Pilat다. 아르카숑만 남쪽에 있는 뒨 뒤 필라는 해안가의 모래가 바람에 실려와 방풍림 역할을 하는 소나무 숲에 막혀 쌓이면서 형성된 거대한 사구다. 길이 2.9km, 폭 616m, 높이 110m를 자랑하는 뒨 뒤 필라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사구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30~40도의 가파른 경사, 바다 쪽으로는 5~20도의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있는데, 오르는 길은 소나무 숲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푸른 대서양이 한눈에 펼쳐지면서 바다와 사막, 숲이 공존하는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레저도 즐길 수 있는데, 특히 패러글라이딩의 성지로도 유명해 3월 말부터 9월 말까지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1. 소테른 지역에 있는 샤토 디켐 와이너리 프로퍼티.
2. 샤토 디켐 내의 셀러.
3. 샤토 디켐 와이너리 외부 전경.
혁신과 전통, 리베르 파테르와 샤토 디켐
와이너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최고의 디저트 와인을 선보이는 샤토 디켐Cha^teau d’Yquem이다. 투어 리셉션 건물로 들어서면 대표 빈티지를 진열해 장식한 고급스러운 라운지가 맞이한다. 이후 오래된 양조장 건물의 코트 야드에서 투어가 시작되고, 포도밭을 거닐며 악명 높을 정도로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한다는 재배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포도나무 한 그루당 와인 한 잔을 생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과실량을 극도로 제한하고, 최상의 상태로 수확하기 위해 보통 1~2차례에 마치는 포도 수확을 7~9차례에 걸쳐 실시한다는 이야기.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 같은 보르도의 이면에 이처럼 철저한 자본시장의 흐름과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동시에 혁신을 일궈내며 와인업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는 와이너리도 볼 수 있다. 현재 가장 이슈가 되는 와이너리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가 그 예다. 리베르 파테르는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의 라틴어명에서 따온 이름으로, 와인 메이커 로이크 파스케LoI¨cPasquet가 생산하는 와인 브랜드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이 브랜드의 2015년 빈티지 한 병이 3만 유로(약 4천7백만원) 넘는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다. 가격이 이토록 비싼 것은 바로 프랑스 와인업계를 파괴시킬 뻔한 포도나무 뿌리 진딧물, 필록세라가 퍼지기 전 유럽에서 재배된 고대 품종을 고대 농법 그대로 재배해 와인을 제조하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재배되는 포도나무는 대부분 미국 품종의 뿌리를 접목한 교배종이라 할 수 있는데, 리베르 파테르는 필록세라 이전의 순수한 유럽 토종 포도 품종으로 1850년대 프랑스 와인의 순수함을 재현하려 한다.
1. 세계적인 건축가장 누벨의 미감이 돋보이는 건물 외관.
2. 레드 컬러의 자갈밭은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는 크러싱 과정에서 영감받았다.
건축가를 위한 캔버스, 샤토 라 도미니크
생테밀리옹에 위치한 샤토 라 도미니크Cha^teau La Dominique는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건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끈다. 밖에서 봤을 때 각도에 따라 채도가 달라 보이는 와인 컬러의 스테인리스 스틸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보르도의 자연 풍경과 이질적인 소재를 사용한 모던한 건물임에도 오만해 보이지 않는 것은 기존 와이너리의 역사적 건물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장 누벨의 건축물은 석회암으로 벽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생테밀리옹 중세 창고 건물과 나란히 붙어 있는데, 높이 또한 옆 건물의 지붕과 나란히 맞추어 위화감이 없다. 샤토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 웰컴 라운지에서는 1백24개의 무라노 유리구슬로 만든 거대한 포도송이 형상의 샹들리에가 반겨준다. 그러나 이 샤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단연 루프톱에 위치한 레스토랑. 샤토 라 도미니크의 절묘한 위치 덕에 이 루프톱에서는 생테밀리옹의 그랑 크뤼급 와이너 리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과 샤토 레방질Cha^teauL’E´vangile, 샤토 피자크Cha^teau Figeac의 포도밭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서다. 또 루프톱 중앙부에는 포도 알갱이와 같은 빨간색 자갈을 가득 깔아놓았는데, 이는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는 크러싱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1. 동양의 건축적 아름다움이 깃든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전경.
2. 비밀의 방처럼 꾸며진 대규모의 와인 셀러.
3.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샤토답게 광활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열정이 결실로,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이번 투어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와이너리는 보르도 메도크의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Cha^teau Cos d’Estournel이다. 이곳은 보르도 10대 와이너리 중 하나로 1등급 못지않은 품질을 지닌 슈퍼 세컨드 와이너리로 명성 높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건축물. 동양의 건축을 연상시키는 팔각지붕, 화려한 아치형 도어 등은 유럽이 아니라 인도의 성처럼 보인다. 이는 1791년 샤토를 처음 설립한 루이 가스파르 데스투르넬Louis Gaspardd’Estournel의 열정적인 와인 비즈니스 스타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가득하고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보르도 와인은 대부분 영국으로 수출했는데, 새로운 시장을 찾던 그는 아시아로 건너갔다. 그 결과 인도 시장을 개척했고, 1838년부터 인도에 주둔한 영국 장교들은 그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인도에서 와인 비즈니스가 성공을 거두자 이를 계기로 인도와 동양 문화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루이 가스파르는 샤토 안팎을 인도의 타지마할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 으로 가꾸었다. 실제 인도에서 공수한 문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장식했는데, 이후 엄청난 빚을 떠안고 샤토를 파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샤토를 인수한 사람은 영국의 은행가였는데, 그 또한 루이 가스파르가 얼마나 이곳에 애정과 열정이 있었는지 알았기에 샤토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비록 괴짜 같은 면모가 있었지만 그의 열정 덕분에 샤토 코스데스투르넬은 보르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샤토가 되었고, 우리는 지금까지도 ‘보르도의 마하라자’라 불리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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