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즐기기 위한 소설들
2019/7·8 • ISSUE 16
writorJang Dongsuk 〈뉴필로소퍼〉 편집장, 출판평론가
검은 개
이언 매큐언 /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어디든 떠날 때면 가방 한편에 책 한 권을 찔러 넣는다.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전자책도 있다. 손안의 세상 스마트폰에 원한다면 1백 권도 넘는 책을 넣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간편한가.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산과 바다로 더위를 피해 떠날 때다. 여름에는 아무래도 소설이다. 이야기만큼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점가에 읽을 만한 소
설이 여럿 보인다.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 불볕 더위를 잊으려는 독자들의 마음을 읽은 듯,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경쟁하듯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선과 악, 인간 내면에 도사린 저마다의 의도
똑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그것을 해석한다. 현대인의 마음에 내재된 선과 악의 대립을 집요하게 성찰해온 영국작가 이언 매큐언은 〈검은 개〉에서도 그 성찰을 이어간다. 동일한 정치적 신념, 그것을 아우른 깊은 애정으로 연결된 사이였지만, 평생 다른 길을 걷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이언 매큐언은 전쟁이 남긴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이야기의 화자는 제러미다. 그는 어릴 적에 사고로 부모를 잃었는데, 이후 다른 사람들의 부모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그는 장인 버나드 트리메인과 준 트리메인 부부에게 매료되는데, 버나드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였고 준은 ‘종교적 은둔자’이고자 했다. 두 사람은 평생 반목하면서도 헤어질 수 없는, 제러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결혼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러미는 장인과 장모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하고, 두 사람과의 불가능할것만 같았던 대화를 이어간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44년 영국 런던. 버나드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에 불타는 합리적인 청년이었다. 준은 신비주의자 요기yogi였다. 속세와 단절되길 원했고, 주로 산속에서 생활을 이어가며 영적인 탐구에 몰두했다. 준은 냉철한 이성과 완벽한 사회질서에 대한 믿음을 굽히지 않는 버나드가 불쌍했다. 맹목적 합리주의, 사회 개혁으로 인류를 구원한다는 오만함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버나드는 준을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 배신자로 여기고, 때론 무엇이든 잘 믿는 성향에 진절머리를 냈다. 화자 제러미는 두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장인과 장모가 엇갈린 지점을 포착한다. 긴 세월에 걸친 불화의 씨앗은,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여행에서 배태되었다. 프랑스 남부 인적 없는 산길을 걷던 두 사람 앞에 검은 개 두 마리가 나타났고, 그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었다. 영적 세계에 심취한 준은 악이 두 마리의 검은 개 형태로 나타났다고 믿으며, 이후 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초월적 세계에 눈떴다고 버나드에게 말했다. 그러나 합리주의자 버나드는 단지 굶주린 들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준의 생각을 무시했다. 두 마리 검은 개는 나치 점령 당시 레지스탕스 색출에 동원되었으나, 전쟁 후 버려진 개들이었다. 이언 매큐언의 〈검은 개〉는 결국 이 두 마리의 검은 개가 어떤 존재인가, 더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인간의 인식이 어떤 지점에 머무는 가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산물 전쟁, 그것을 해석하려는 작가의 탐구는 치열하다. 회고 이후 버나드와 준의 삶은, 화자 제러미의 인식을 또 어떻게 시시각각 변화시키는지도 확인하길 권한다.
진이, 지니
정유정 / 은행나무
정유정의 새로운 서사가 궁금하다면
〈7년의 밤〉, 〈28〉의 작가 정유정의 신작 〈진이, 지니〉. 마지막 출근날 침팬지 구조 요청을 받고 현장에 출동한 유인원 책임 사육사 진이는 침팬지가 아닌 보노보 한 마리를 구조한다. 스승의 조언에 따라 보노보를 ‘지니’라고 부르기로 하는데,갑작스럽게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교통사고 소리를 들은 민주는 두 사람을 구조하려고 애쓰며 ‘뜻하지 않은 현상’에 휘말린 진이와 모종의 거래를통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간치밀한 서사와 구성으로 사랑받은 정유정은 〈진이, 지니〉에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해 작품의 흡인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더 와이프
메그 월리처 / 심혜경 옮김 / 뮤진트리
유명 작가의 아내가 바란 진정한 삶
조지프 캐슬먼은 핀란드 헬싱키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가 작품에 매진할 때 아내 조안 캐슬먼은 남편의 작품 활동을 위해 헌신했다. 거장과 그의 아내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그려내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메그 월리처의 〈더 와이프〉는 동서양을가리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직면하게 만든다. 내조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조안은 평생 허무와 위선의 그림자속에서 산다. 그 비밀을 밝히기로 한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며 우리 안의 위선을 찾아내는 것이 〈더 와이프〉를 읽는 보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레몬
권여선 / 창비
죽음을 이해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
권여선은 한국 사회의 그늘진 곳, 혹은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일을 잡아채는 데 뛰어난 작가다. 〈레몬〉 역시 그런 작품이다. ‘미모의 고등학생 살인 사건’으로 이름 붙인 사건에서 억울한 죽음은 잊힌 채 죽은 이의 아름다움만 소비된다. 미제 사건으로 17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엄마는여전히 언니 해언에게 집착하고 동생 다언은 그마음자리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추적한다. 용의자를 만나고, 사건의 행간에 담긴 의미를 풀어가는 화자 다언의 심리를 권여선은 철학적 요소를담아 풀어낸다. 남은 이들의 처절한 투쟁이 이 작품을 읽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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