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은 하르모니아 문디에서 나온 〈라 폴리아La Folia〉다. 에스파냐에 전해지는 36가지 형태의 라 폴리아를 한 장에 모은 것이다. 표지 그림은 에스파냐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개’다. 내가 구한 음반은 일본에서 제작했는데 그림 제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기했다. ‘모래에 산 채 묻히는 개!’ 비스듬한 언덕에서 개는 목까지 묻혀있다. 언덕이 움직이는 모래라면 개의 머리는 곧 사라질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이다. 내 가슴을 찌른 것은 개의 눈이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눈에 공포와 절망, 체념이 뒤섞여 있다. 몇 번의 터치로 빠르게 그린것 같은데도 화가는 개의 눈에 어린 심경을 낱낱이 드러냈다. 개의 머리 위 텅 빈 공간이 아득해 절망감을 더한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조금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한 김석희 선생이 오래전에 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김 선생은 홋타요시에가 쓴 〈고야〉 번역을 마치고 대단한 책이니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해하기 힘든 고야의 그림과 마주친 김에 그 숙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2019년 봄은 네 권 1천6백 쪽에 달하는 〈고야〉에 푹 빠져 오랜만에 좋은 책 읽는 복을 누렸다. 책을 읽는 내내 고야라는 인간에 도취된 느낌이었다. 그는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에너지 덩어리였다. 한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는데도 고야가 어떤 인간인지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깡촌에서 태어나 궁정 수석 화가에 올랐으며, 출세를 위해서는 야비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절륜한 정력으로 아내를 20번이나 임신시키고, 평균연령이 35세이던 시절에 82세까지 산, 간단치 않은 사내. 화가 고야는 더 복잡하다. 가차 없는 붓끝으로 왕을 ‘복권 당첨된 빵집 주인’으로 그리고, 뜨거워진 몸을 비틀며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을 그려 최초의 포르노 화가로 기록됐으며,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의 참화를 증언한 기자記者였는가 하면, 대표작‘5월 2일’과 ‘5월 3일’을 통해 이름 없는 군중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 그의 동상이 입구에 서 있는걸 봤는데 그만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에스파냐 출신 여류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라로차가 연주한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이 음악의 해석에 관한 한 라로차의 권위는절대적이다.
‘개’는 고야가 만년에 그린 작품이다.
1819년 73세가 된 고야는 마드리드 교외에 저택을 사서 이사했다. 그는 40대에 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됐는데, 구입한 집은 우연히 전부터 ‘귀머거리의 집’으로 불렸다. 고야는 이 집의 1층과 2층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3년에 걸쳐 15점의 그림을 그렸다. 70대 노인의 작업으로는 놀라운 프로젝트다. 화가가 제집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닌 자신을 위해 그린다는 뜻이다. 같은 시대를 산, 역시 귀머거리였던 베토벤이 ‘우둔한 소 떼나 당나귀 같은’ 청중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최후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한 심경을 떠올리게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귀머거리의 집 작품을 ‘검은 그림’이라고 부른다. 내용이 기괴하기 때문이다. 홋타 요시에는 ‘단단히 미쳤다’고 했다. 몸서리치게 음침한 ‘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식당이 있는 1층 벽에 그렸다. 2층의 ‘두 여자와 한 남자’는 사내가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이다. 늙은 고야는 마침내 붓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이런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가족과 사는 공간에. ‘개’에 대해 요시에는 검은 그림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뿐이다. 기대를 했지만 그도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그림인 것이다. 고야는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일까. 〈고예스카스Goyescas〉라는 음반이 예전부터 레코드 서가에 있었다. 에스파냐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를 좋아하는 나에게 음반 가게를 하는 친구가 선물로 준것이다. 그런데 고예스카스가 ‘고야풍風’을
뜻한다는 걸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에스파냐 작곡가 그라나도스가 고야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무소륵스키가 친구의 유작을 보고 ‘전람회의 그림’을 지었듯이.
‘사랑과 죽음-발라드’는 〈고예스카스〉에서 가장 심오한 곡이다. 초입에서 건반을 강타하는 불안한 음향을 들으면 ‘개’의 눈이 떠오른다. 공포와 절망의 그 눈이. 그러나 음악은 이내 아름다운 회상으로 흐른다. 최후의순간에 이르러 개는 옛 사랑의 기억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음악이 끝나면 개도 어느덧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개가 죽음을 앞둔 고야로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