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일에 대하여
2019/6 • ISSUE 15
writorJang Dongsuk 〈뉴필로소퍼〉 편집장, 출판평론가
여행의 기쁨
실뱅 테송 / 문경자 옮김 / 어크로스
〈크리스마스캐럴〉로 유명한 작가 찰스 디킨스는 작품에 몰두할 때면 런던의 밤거리를 걷곤했다. 그에게 걷기는 ‘창조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였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캐럴〉도 한밤중의 산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침 일찍 걷기를 즐겼는데 ‘소요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또 매일 오후 4시쯤 산책했던 칸트 덕에 동네 사람들은 저녁밥 준비를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걷기는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행위가 아닐까 싶다. 아무런 도구없이 스스로의 몸만으로 움직이는 이 행위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면서 최근에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생각해보면 걷기는 여행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걷지 않고는 여행할 수 없고, 여행하려면 반드시 걷기를 각오해야만 한다.
두 발로 여행하는 즐거움
〈여행의 기쁨〉의 저자 실뱅 테송은 오직 두 발로 여행하는 사람이다. 하루면 어디든 도착 할 수 있지만 ‘여행하는 21세기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 불리는 그는 오로지 걷기만으로 여행지를 찾아 떠난다. 그는 히말라야를 5,000km 이상 걸었고, 중앙아시아 대초원에서는 3,000km 이상을 걷거나 말을 타기도 했다. 비행기, 기차, 심지어 자동차도 타지 않고여행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느림이 속도에 가려진 사물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시간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무심해지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몸의 속도에 맞춰 시간도 느려진다. 황량한 사막을 걷는다고 가정해보자. 불과 몇 분간 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구의 역사가 응축된 사막의 몇 분은 어쩌면 수년의 시간과 같을지도 모른다. 단지 지구의 역사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사막은 세상의 시간에서 벗어난 공간이고, 하여 나만의 시간을 되찾는 곳이기에, 그곳에서의 몇 분은 수년의 시간에 다름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뱅 테송은 이렇게 덧붙인다. “걷는 것은 여행자를 본질에 이르게 한다.” 실뱅 테송은 스스로를 ‘반더러wanderer’, 즉 낭만적 방랑자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꿈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경이로운 것이 널려 있다”고 확신했던 셰익스피어의 말마따나, 빠름이 대세가 된 시대에도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고, 바깥의 부름에 대답”할 수 있다. 반더러는 “저녁이면 어느 곳간에서 잠을 청하게 될지 모르면서도 아침에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19세기 독일의 반더러는 “걸어서 무사태평하게 유럽 대륙을 횡단”하곤 했는데 “아름다운 전원에 둘러싸여 불어오는 바람에 영혼을 열어두고 자신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 만족”을 누렸다. 실뱅 테송은 낮에는 걷고, 밤에는 기록하며 성찰하는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 수시로 시를 암송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도 한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실뱅 테송처럼 반더러가 될 수는 없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지구의 진짜 모습은 어떤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어떤 삶을 향유하는지 아주 잠깐의 여유로도 들여다볼 수 있다. 거대한 자본에 속한 여행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은 걷기에서 비롯된다.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 홍은택 옮김 / 까치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 칠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것도 배웠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자랑스럽게도 몸이 날렵하고 튼튼해졌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 전에는 있는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대자연은 아름답다
2002년 출간된 〈나를 부르는 숲〉은 걷는 여행자들의 경전經典과도 같은 책이다. 빌 브라이슨이 총 길이 3,500km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고 또 걷는 이야기, 그 걷기의 향연 속에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장관이다. 지도는 중구난방이고, 수시로 흑곰이 출몰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그는 유머를 던진다. “나는 딱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면 보장만 있다면–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 1,400km를 걸으며 발견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대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묘사가 특히 아름답다.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 김정아 옮김 / 반비
“여행의 경이와 해방과 정화를 얻자면, 세계를 한 바퀴 돌아도 좋겠지만 한 블록을 걸어갔다 와도 좋다.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연대를 이뤄내는 걷기의 위대함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나 성찰처럼 무언가 목적을 두고 걷곤 한다. 문화평론가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걷기의 색다른 효과 하나를 더 언급한다. ‘걸으면서 사유’했던 사람들은 걸으면서 ‘창조’하고, 궁극에는 연대한다고 솔닛은 말한다. 걷기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공공장소가 없어진다면 결국은 공공성도 없어진다”고 말한 그는 연대의 공간을 지켜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걷는 행위가 여전히 세상의 모든 기득권을 바꾸는 “전복적 행동”이라고 말한다. 걷기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솔닛의 상상력이 충만한 책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 문학동네
“나는 사람이 그다지 강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마치 날씨처럼 매일 다른 사건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우리 몸과 마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는 쉽지 않다. 변화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작은 물결에 배가 휩쓸려 가서는 안 되므로 닻을 단단히 내릴 필요가 있다.”
걷는 사람 하정우를 만나는 시간
배우 하정우에게는 또 다른 이력이 있다. 바로 걷는 사람이다. 흥행 배우이니 멋진 자동차를탈 만도 한데, 웬만하면 걷는다. 무려 하루 3만보. 걷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걷기 모임까지 만들었다. 오랫동안 오를 무대가 없었을 때, 그는 걷기를 택했다. 하염없이 걸으며 기분 전환이 되었고, 어렴풋한 출구도 찾을 수 있었다. 천만 관객 영화가 몇 편이지만, 여전히 걷는 이유다. 하정우에게 걷기는 “처한 상황이 어떻든,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는가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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