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E NEW WORLD
2022/01 • ISSUE 43
10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새롭게 마음을 다지며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요즘,
6편의 영화와 함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는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내가 되겠노라고.
writer 주성철
영화 평론가
JTBC 〈방구석 1열〉 고정 패널
유튜브 〈무비건조〉 출연 중" 진짜 루저는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야. "
미스 리틀 선샤인
감독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출연 스티브 카렐, 토니 콜렛, 그렉 키니어,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스린, 앨런 아킨
〈미스 리틀 선샤인〉은 1박 2일 여행 중에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가족 영화이자 로드 무비다.
후버 가족은 막내딸 올리브의 미인 대회 참가를 위해
갑작스레 여행을 떠나게 된다.
성공학 강사로 일하며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그리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아버지 리처드,
언제나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오빠 드웨인,
마약을 하다가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
제자였던 게이 연인에게 실연당해 자살을 시도했던 삼촌 프랭크
그리고 그런 가족들 사이에서 구심점이 되는 어머니 쉐릴.
그렇게 여섯 가족은 비좁은 고물 미니버스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며 비로소 진짜 대화를 나눈다.
가족들은 여행 중에 계약 취소, 입학 취소 등의 소식을 듣거나
마주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는 등 괴로운 순간과 직면하는데,
이때 가족이 곁에 있지 않았다면
더 큰 절망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때로 가족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존재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계획을 설계하게 도와준다.
어느 하나 멀쩡해 보이지 않는 가족들이 한데 모였을 때
오히려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또한 막내딸의 대회 참가로 인한 것이긴 하지만
‘일단 시도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려주기도 한다.
대회가 아니었다면 집에서 허송세월했을 게 뻔한
드웨인과 프랭크는거의 처음으로 외부 세계와의 교류에 나서고,
새 출발을 향한 의지를 다진다.
실의에 빠져 더 큰 상처나 실패를 걱정하며 가만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가족들은
비로소 각자의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가장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르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준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아.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지.
별이 되고 싶어?
별이 되고 싶으면
먼저 열심히 살아야 해."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월요일 아침 죽고 싶네.”
세상 모든 직장인의 심경을 대변하는 가사라고나 할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가슴 절절한 래퍼의 노래가 흐르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침 체조. 누가 봐도 억지로 시켜서 하는 체조에
직원들의 표정에서는 전혀 생기를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몸을 좀 풀라치면 직장 상사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출근한 지 1시간 만에 하루 에너지를 다 써버린 신입 사원
다카시는 계속된 야근으로 지하철역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걸까.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쉬고 싶다. 자고 싶다.
내일 같은 건 안 와도 돼”라고 읊조리는데 눈은 감긴다.
급기야 선로로 떨어질 뻔한 순간,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 야마모토가 운명적으로 그를 구한다.
만날 때마다 용기를 북돋우는 야마모토는
새 출발을 주저하는 세상 모든 청춘을 응원하는 초현실적 존재다.
“힘들 때는 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는 그의 말에 힘입어
무려 2년 만에 고향 집에 들른 다카시에게 아버지도
“인생은 살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법”이라는
조언을 건넨다.
용기를 얻은 다카시는 망설임 없이 사직서를 제출한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발상의 전환을 이루자마자 회사에 남아 있는 동료들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하는 마법이 펼쳐진다.
다카시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야말로 강제적인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게 된다.
일상에서 멈추길 두려워했던 사람들에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는 진정한 도전의 영화다.
우리 삶에서 간혹 겪는 예상치 못한 ‘경로 이탈’이
때로는 훌륭한 지름길이 되는 법이다.
"열정은 나쁜 게 아니지만
대단한 것도 아니지."
대니 콜린스
〈대니 콜린스〉는 뒤늦게 삶의 의미를 깨달은 한 남자가
잊고 지내던 가족을 찾아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다.
가수 대니 콜린스는 무려 40세 연하의 여자 친구와 살고,
요일별로 각기 다른 슈퍼카를 타고 다니는 최고의 슈퍼스타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40년 전 비틀스의 존 레논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월드투어를 취소하고 홀연히 뉴저지의 한적한 호텔에 투숙하며,
잊고 살았던 아들 가족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실제로 존 레논이 한참 후배였던
영국 뮤지션 스티브 틸스턴에게 보냈던
친필 편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하지만 잡지사로 보냈던 이 편지는 전달되지 않은 채
34년간 사라졌다가 지난 2005년 한 수집가에 의해 공개됐는데,
그 극적인 사연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미 슈퍼스타 자리에 오른 대니 콜린스가 뒤늦게 작곡을 하면서
진짜 ‘뮤지션’이 되기 위해 음악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은
크나큰 감동을 준다.
또한 그것은 영화 바깥에서 70대 중반 나이의 배우로서
모든 것을 이룬 알 파치노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해보지 않은 역할이 없고
감독의 꿈을 이루기도 한 그에게
놀랍게도 가수 캐릭터는 생애 처음이었다.
가수를 꿈꾸기도 했고 “관객을 사로잡는 록스타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 그로서는 〈대니 콜린스〉가 진정한 ‘도전’의 영화였다.
실제로 6천 석 규모 콘서트장의 휴식 시간에 촬영한 〈대니 콜린스〉의 공연 장면은,
그런 알 파치노의 도전을 격려하는 청중의 호응속에
그 어떤 특수 효과나 CG 없이 완성됐다.
〈대니 콜린스〉와 알 파치노의 수줍은 고백은
우리 삶에서 도전이란 결코 끝이 없음을 보여준다.
콘서트 장면에서 그가 부른 노래
‘돈 룩 다운Don’t Look Down’은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곡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운 이상 아래를 보지 말고
계속 성장하려 애써야 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이들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영화다.
writer 장병원
영화 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객원조교수
"신이 방귀 냄새를 만드신
이유를 아니?
못 듣는 자도
즐길 수 있으라고."
코다
〈코다〉는 가수를 꿈꾸는 열일곱 살 소녀와 그녀의 청각장애인 가족에 대한 성장 드라마다.
‘코다CODA’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아이(Child of the Deaf Adults)’를 지칭하는 약어.
서사는 10대 소녀 루비 로시와 낚시 사업을 하면서 생계를 영위하는 그녀의 가족을 따라간다.
청각장애인 부모 프랭크와 제시, 오빠 레오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루비에게 의존하지만
루비에게는 음악을 향한 꿈이 있다.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이행하는 길목에 있는 이 소녀는
음악 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망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기 위해
고향에 남아야 한다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뇌한다.
션 헤이더 감독은 실제 장애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등
장애인 문화에 대한 견고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
이를테면 루비가 콘서트에서 연주할 때 프랭크와 제시, 레오는 노래를 듣지 못한 채 객석에 앉아 있다.
가족들은 티슈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나 박자에 맞춰 박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상황을 인식한다.
청각장애인이 일상의 감각과 반응을 공유할 수 없는 까닭에 이 장면을 보는 것은 다소 고통스럽다.
순간 감독은 사운드를 삭제해버린다.
장애인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관객도 잠시 느껴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영화를 단순한 휴먼 드라마 이상으로 만든다.
진정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홀로서기를 선택한 루비가
음악 학교에 입학하는 결말은
보편적인 울림을 줄 뿐 아니라 새로운 삶과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하나님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사랑을 만드셨어.
사랑을 풀이하자면
인생에 하나뿐인 타당한 표현이야."
타임
흑인 여성 감독 가렛 브래들리가 연출한 〈타임〉은
무장 강도로 6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로버트슨과
그의 부인 시빌 리처드슨의 가족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두 사람이 젊고 미성숙했을 때 저지른 과오로 인해
이 가족은 감금의 그늘에 놓인다
영화는 시빌이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주립 교도소에서
로버트슨을 구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브래들리 감독은 시빌이 21년 동안 찍고 편집한
홈 비디오 영상과 시간에 대한 기록,
현재를 찍은 장면을 교대로 엮어가면서 로버트슨이 석방되는
클라이맥스에서 이들을 합친다.
로버트슨의 미소에 마음을 빼앗긴 시빌의 10대 시절에 대한
회상부터 아무도 다치지 않았던 무장 강도로 인한
기나긴 억류, 임신과 양육,
사회 활동가로서 들려주는 연설 등 다양한 시간을 왕래한다.
인종 갈등과 형사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지만
〈타임〉은 가족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헌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부당한 제도의 압박을 가족애로 극복해나가는 인간을 감동적으로
탐구하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폭스 리치Fox Rich’라 불리는 시빌 리처드슨이다.
대부분의 장면을 직접 촬영한 시빌은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며
여섯 명의 아이를 양육하고, 부당한 판결을 받은
남편의 형기를 줄이기 위해 싸운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빌의 인생 유전은
완전한 불모의 상태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과정이다.
2020년 미국영화비평가협회, 뉴욕영화비평가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현재 ‘아마존 프라임’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아버지가 배를 탔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있었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환상의 빛
납득할 만한 사정을 이야기해주지 않은 채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버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환상의 빛〉의 주인공 유미코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 영화는 이유를 짐작하기 힘든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한순간에 일상이 무너지는 여자의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
고향으로 가서 죽겠다며 실종된 할머니,
사랑하는 남편 이쿠오의 자살로 유미코의 행복은 파괴된다.
이 모든 비극이 일상을 집어삼킬 즈음
그녀는 이웃의 소개로 만난 남자 타미오와
새로운 가족을 이루기 위해 외딴 바닷가 마을로 떠난다.
시간은 흘렀고 환경도 달라졌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끝에서 죽음의 망령에 시달리던 유미코는
돌고 도는 계절의 순환처럼 떠나간 사람과
그들을 대체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자각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
〈환상의 빛〉은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상실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는
슬픔에 질질 끌려가지 않고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삶은 고통스럽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는그 질문에 응답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에 빠진다.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은 관객이 영화 속 인물을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는
그들의 삶과 행위를 가감 없이 목격한 뒤 받아들이게 만든다.
감정을 부추길 만한 어떠한 카메라 움직임도 자제하며
고정 촬영함으로써 유미코의 표현되지 않는 감정과 생각에
자연스레 공감하거나 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관조적 거리를 유지한다.
소소한 일상의 가치, 미감이 넘치는 구도, 시적인 대사를 통해
쓸쓸한 삶의 자취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걸작이다.
editorJang Jeongjin photographer Jang Seojin stylist Jang Seo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