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랙>
사막 한가운데서 나를 찾는 여행
2020/7 • ISSUE 27
writerSim Youngseop 심리학자, 영화평론가
©See-Saw Films / Alamy Stock Photo
호주를 처음 여행하던 때가 생각난다. 하루에 5~6시간씩 차를 운전하면서 시드니에서 멜버른을 향해 계속 내려갔는데, 오리온 별자리가 거꾸로 보이고, 북반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남십자성이 밤하늘에서 반짝거렸다. 호수에는 백조 대신 흑조가 유유히 떠다니고, 캔버라 주차장에서 떨군 사진기는 2시간이 지나도 행인이 없어 떨어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작가 로빈 데이비슨Robyn Davidson의 실제 여행을 담은 2014년 작 호주 영화 <트랙>의 진정한 주인공은 호주의 중심부, 일명 아웃백, 오지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오지는 모래가 물결치는 장엄한 금빛 사막이 아니다. 광활하지만 황폐한, 건조한, 모래 평지라고 하는 편이 더 실제적일 것이다. 1년에 차가 5~6대 다닐까 말까 하고 가뭄이 7년간 계속되는 곳. 그런데 당시 28세이던 로빈 데이비슨은 “너무 멀다. 미친 게 틀림없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왜 1천7백 마일의 거리를 낙타 네 마리와 개 한 마리와 함께 6개월을 걸어서 홀몸으로 횡단하려고 했을까?
영화 <트랙>의 시작은 화면이 리버스되면서, 로빈의 그림자부터 시작한다. 이 여정에서 그녀가 가장 많이 보게 될 이미지는 아마도 자신의 그림자일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긴 여행을 떠났다고 스스로 믿는다. 빈털터리 홀몸으로 앨리스스프링스에 도착한 후 무급으로 일하면 낙타를 준다는 말에 속아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 맨몸으로 쫓겨난다. 그 후 살리 마호메트란 아프가니스탄 낙타몰이꾼의 후예를 만나 비로소 낙타 길들이는 법을 배운다.
©See-Saw Films / Alamy Stock Photo
그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또 한 명의 남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기자 릭 스몰란이다. 그는 차를 몰아서 가끔 그녀를 만나러 오고, 그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제공해준다. 그와 단 한 번 잠자리를 하지만, 로빈과 릭 사이에는 로맨틱한 남녀 관계보다는 인간적인 유대만이 넘나든다. 원주민의 땅에서 사는 유일한 백인인 글렌을 만난 후, 그녀는 릭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재정적인 도움을 주긴 하지만 별 도움이 안 되는 낭만에 빠진 릭의 생각이 싫다”고.
호주의 오지, 인간이 없는 그 땅은 그래서 거꾸로 우리를, 우리의 도시 문명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백인 문명 바깥에서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경함. 로빈의 눈으로 보자면 인간은 너무 소란스럽고 말이 많고 잔뜩 꾸민 사진만 찍는 동물이다. 오히려 두키, 밥, 젤리, 베이비 골리앗이라 이름 붙인 낙타가 더 믿음직하다. 앨리스스프링스에서 약 한 달간 걸어 그 유명한 거대한 바위 에어즈 록에 도착했을 때도, 감독 존 커랜은 그저 멀리 카메라를 설치한 후, 하나의 배경으로 그곳을 다룬다. 에어즈 록조차 관광지라 여긴 듯이.
한편 사막의 오지로 깊이 걸어 들어갈수록 로빈은 캐멀 레이디, 즉 낙타 아가씨로 호주 사회에서 점점 유명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유명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의 가장 멋들어진 면은 호주 원주민을 대하는 그녀의 진정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주민의 비밀 의식까지 몰래 찍는 사진가 릭과는 달리 그녀는 릭이 떠나가자 그를 대신해 원주민에게 사죄를 한다. 여성은 짐승을 도살할 수 없다는 원주민의 가부장적이고 미신적인 사고도 순순히 존중한다. 여행 중 원주민 에디와 신성한 땅을 가로질러 동행하지만, 그곳을 벗어나자 자신만의 의지를 촛불 삼아 한 발 한 발 사막의 모래폭풍을 헤쳐나간다.
©See-Saw Films / Alamy Stock Photo
1. 로빈 데이비슨의 여정을 미국 사진기자 릭 스몰란Rick Smolan의 사진으로 담은 책 〈FROM ALICE TO OCEAN〉
2. 릭 스몰란이 촬영한 로빈 데이비슨의 사진이 커버를 장식한, 1978년 발행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모든 인간이 행하는 운동 중 걷는 것은 가장 느린,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동일 것이다. 실제로 로빈이 사막에서 만난 한 남자는 오토바이를 몰고 와 그녀보다 빨리 인도양에 도착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걸어야만 천천히 그 모든 풍경 속에 흘러 들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경비행기 등 모든 탈것은 속도를 제물 삼아 인간 정신의 일부를 온전히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 어떤 기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로빈은 그저 걷는다. 신이 내려주신 육체란 기계만 이용해서. 아주 천천히.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마침내 오지의 심장까지 다다르자, 그녀는 비로소 오랫동안 억압해둔 자신의 외로움을, 우물처럼 깊은 심연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로빈의 아버지는 서아프리카에서 금도 찾고 사냥도 하는 모험가였는데, 11세에 그녀의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살을 한다. 그후 그녀는 고모 손에 양육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장 지독한 아픔은 어머니와의 사별보다 어린 그녀와 기꺼이 교감한 개 골디와의 이별이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로빈을 보내면서 골디를 안락사시켰다. 그녀에게 이러한 트라우마는 여행 내내 함께한 반려견 디기티가 백인들이 푼 독을 먹고 죽자, 상처가 덧나듯 다시 심해진다. 바싹 마른 땅. 끊임없이 엄습하는 갈증. 아침마다 깨워준 시계의 고장. 완전히 터져 익어버린 피부. 아버지의 나침반을 잃어버렸다 되찾은 것. 몰려드는 기자들.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지만, 디기티를 떠나보낸 후, 이별은 그녀를 사막에 주저앉혀버린다.
파리 떼가 몰려와 달라붙는 고깃덩어리로 변한 디기티. 피가 낭자한 호주의 흙길. 골디와 헤어진 그날처럼. 크고 검은 뱀이 그녀의 목에 똬리를 틀다가 사라져버린다. <트랙>에서 가장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일 것이다. 로빈은 명징한 죽음과 대면한다. 이 지경이 되자 그녀 눈에 사막의 낙타들이 환영처럼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기자들이 또다시 몰려든다. 일주일 동안 찾아 헤맸다는 릭에게 로빈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릭, 나 너무 외로워요.”
이 한마디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녀는 1천7백 마일을 걸었다. 이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관객은 이해할 것이다. 이 단어들의 무게를. 영화 <트랙>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시적이다. 로빈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모든 길에 심중의 말을 던져, 더욱 단단해지는 자기 확신의 선물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이때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고독력(고독을 견디는 힘)’으로 변화한다. 느리지만 감상을 제거하고 남은 한 여자의 그림자에 침잠하는 내 발걸음을 기꺼이 겹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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