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잠시 미끄러지는 순간
엘리엇 어윗
2019/12 • ISSUE 20
writorKim hyunho 사진평론가
흥미로운 것은, 같은 일상을 향해 카메라를 겨눈 사진가들이 전혀 다른 모습과 정서가 담긴 사진을 찍는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브레송이 포착한 순간이 정교하고 우아하다면, 게리 위노그랜드가 찍은 뉴욕의 거리는 언제나 거칠고 투박하다. 로버트 프랭크가 찍은 미국의 모습은 절망적으로 가라앉아 있고, 다이앤 아버스의 카메라에 들어온 것들은 무엇이든 뒤틀려 보인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1960년 여름, 엘리엇 어윗은 사우스 네바다의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ts)>의 촬영장을 취재했다. 영화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존 휴스턴이 감독을 맡았고,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극작가 아서 밀러가 시나리오를 썼다. 당대 최고의 배우 클라크 게이블과 할리우드에서 가장 지적인 배우라는 몽고메리 클리프트, 그리고 마릴린 먼로가 주연이었다. 그곳에서 엘리엇이 찍은 사진은 하나같이 즐겁고 유쾌한 느낌을 풍겼다.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클라크 게이블과 아름다운 마릴린, 진지한 표정의 감독, 격렬하지만 즐거운 촬영 현장의 에피소드가 가득했다.
하지만 실제 촬영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엘리엇 어윗과 같은 매그넘 에이전시 소속이자, 함께 현장에 파견된 여성 사진가 잉게 모라스가 찍은 사진에는 그런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었다. 감독은 끊임없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매일 밤 도박을 한다. 마릴린 먼로는 이미 약물중독 상태에 아서 밀러와의 연인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모두가 미움과 불안에 허우적거린다. 엘리엇 어윗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하며 털어놓았다. “마릴린이 너무 망가져 있었다. 거의 촬영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 LA로 도망쳤다. … (중략) … 하지만 마릴린을 나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포토제닉하다는 것은 그녀가 지닌 명성의 중요한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웃음을 찾은 이유가, 어윗이 고통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엘리엇 어윗은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파리로 이주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족의 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심상치 않은 반유대주의의 분위기를 피해 어린 엘리엇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이주했고, 다시 배를 타고 뉴욕으로 떠났다. 엘리엇 어윗은 그 당시를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1939년 9월 1일에 뉴욕으로 떠났고, 9월 3일에 전쟁이 터졌어. 아무 배나 마구 격침하는 독일 U-보트가 바다에 가득했지.” 어머니는 엘리엇이 열두 살 때 이혼했고, 그가 열여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자식을 버려두고 살길을 찾아 뉴올리언스로 갔다. 혼자 남은 엘리엇은 자신의 힘으로 대학에 입학해 사진과 영화를 전공했다. 졸업한 후에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이런 그가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세계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아름답고 유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일종의 기이한 결기에 가까워 보인다. 고통과 슬픔이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면, 웃음과 로맨틱한 순간 역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슬픔을 참혹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달콤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진 속 키 작은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그의 목에 손을 두른 여자는 메리 프랭크다. 두 해 전 결혼했고, 지금은 가족 여행 중이다. 메리는 훗날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가, 그리고 지독한 반골인 로버트는 현대 미국 사진계를 번쩍 들어 전혀 다른 곳에 가져다둔 거장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저 열아홉 살과 스물여덟 살의 신혼부부이자, 미군 사진병 조수 엘리엇 어윗의 친구에 불과한 듯 보인다.
만약 정교한 프레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세대 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었더라면 이 사진을 굳이 남겨두거나 공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리엇 어윗은 언제나 카메라 앞의 대상이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어 보이는 순간 참지 못하고 달려나가는 사진가였다. 예를 들어 이 사진 프레임 왼쪽 상단의 조명과 식탁 위에 놓인 꽃이 조형적으로 매끈하게 정리되지 못했다고 해도, 엘리엇은 친구들이 연출한 아름다운 모습을 본 순간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때도, 그리고 아흔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말이다.
“어쩌면 슬픔을 참혹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달콤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이는 엘리엇의 유대인 친구 로버트 프랭크였다. 올해 9월, 아흔다섯 살이었다. 메리는 1969년에 프랭크와 이혼했고, 이제 여든여섯 살이 되었다. 최근까지도 사진집을 내고 개인전을 가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엘리엇은 재작년에 이탈리아 파비아에서 90세 기념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여전히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어떤 기이한 세계를 더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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