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상을 보며 그것을 구성하는 재료의 성질을 추측한다. 무르거나 딱딱하거나 휘거나 구겨지거나 하는 등의. 그래서 어떤 대상을 정의할 때 그것의 성질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프랑스 출신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Othoniel, 1964~)의 유리나 황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 같은 재료의 ‘상식적’ 특성이 부정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깨지기 쉬워 사라질듯 보이지만 영속적 성질은 유지되며, 경도가 느껴지지만 액체와 같은 성질도 감지된다. 빛을 통과시키기도 하지만 그 반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오래 사용해 일상에서 쉽게 발견되고 사용하는 매우 평범한 재료지만 예술 작품이나 스테인드글라스 등에 쓰이면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토니엘 작품의 출발은 지극히 당연한 것과 역설의 지점에서 출발한다. 오토니엘의 작품을 보며 혹자는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묵주를 떠올릴 것이고, 누구는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오토니엘 작품의 독특한 형상도 눈길을 끌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리 외에도 유황, 인, 밀랍(wax) 등 작품의 재료 자체가 시선을 잡아끈다. 이들 재료는 흔적을 남긴다는 특징이 있는데 작업 도구의 사용, 작업자의 지문, 그리고 공정 중 알게 모르게 생긴 흠집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황홀하고 신비로운 색채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도 오토니엘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오토니엘이 재료 선택을 어떤 ‘촉’에 의해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과학적 실험과 성찰에 가까운 연구 끝에 이뤄지는 것이다. 1992년 ‘두음 전환(The Spoonerism)’은 바로 오토니엘의 집요한 재료 선택 과정으로 이룩한 결과이며,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작품장 체제를 갖추고 작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재료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은 비교적 근작 ‘거대한 파도The Big Wave’(2017)나 ‘볼 수 없는 얼굴Invisibility Faces’(2017)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바다. 인도 장인이 만든 벽돌 형상의 검은 유리를 쌓거나 흑요석을 깎아 만든 이러한 작업은 그가 젊은 시절 고고학자나 과학자와 함께 벌였던 일련의 재료 실험을 연상하게 한다. 오토니엘은 검은 유리 작업을 일종의 ‘거울’로 비유하고 있다. 즉 작가가 타인을 비추고, 그 모습은 바로 자화상이 된다는 말이다.
찬란한 아픔과 그것의 치유
독특한 형상과 재료는 작가의 개인적 사연과 결합해 더 큰 울림을 자아낸다. 사제司祭가 되고자 했으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연인을 향한 추모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고자 오토니엘은 작업을 시작했다. 사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을 찍은 사진 작품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Self-Portrait in Priest’s Robes)’(1986)이 바로 그것인데 그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오토니엘에게 쿠바 출신작가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 1957~1996)의 죽음도 큰 상처였고, 작품의 동인이 되었다. 순수와 현실적 삶에 대해 고민하던 곤살레스가 죽음을 맞이하자 오토니엘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곤살레스가 136kg 분량의 사탕을 한 구석에 설치하고 관람객에게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던 ‘무제(USA Today)’(1990)를 제작했던 것처럼 오토니엘에게 소품을 제작, 관람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작품을 만들게 했다. 이때 등장한 작품이 바로 그의 첫 유리구슬 작품 ‘상처-목걸이(Le Collier-cicatrice)’(1997)다. 오토니엘은 관람객이 그 목걸이를 착용한 사진을 찍고 이를 전시했다. 실제로 그는 이 목걸이를 지금도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관람객에게는 찬란한 창작물로 다가오는 아이러니. 그래서 오토니엘의 작품을 흔히 상처와 치유 과정으로 해석한다. 오토니엘 작품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눈, 유두, 생식기, 항문 등 파편화된 신체 기관의 형상이다. “자웅동체는 전혀 다른 존재의 상징이며 특정한 성별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다. 유두, 구멍, 입술 혹은 눈 같은 양면성을 지닌 신체의 모든 부분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My Way>전시 인터뷰). 이러한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에 참가하면서부터다. 당시 예술계의 관심이었던 성(gender)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오토니엘의 작품 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밀하거나 보편적이거나
한국 관람객이 오토니엘의 작품을 가까이서, 그것도 대규모로 볼 수 있었던 것은 2011년 플라토 미술관(舊 로댕갤러리)에서 열렸던 그의 전 세계 순회전 <My Way>를 통해서였다. 오토니엘은 대중성을 위해 다소 직접적인 전시 제목을 택했고 작품 세계를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전시에 출품된 ‘나의 침대(MyBed)’(2003)는 가장 사적이면서 휴식의 공간인 침실의 은밀함을 극대화했다. 이와 더불어 ‘소원을 비는 벽(The Wishing Wall)’(1995)은 관람객이 직접 벽면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며 말 그대로 소원을 비는 행위를 하게 만든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오토니엘은 내밀한 사적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첫 공공미술 작품은 파리 중심 팔레 루아얄-뮈제 뒤 루브르Palais Royal143 Muse´e du Louvre 역 출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야행자들의 키오스크(Le Kiosque des Noctambules)’(2000)다. 설치된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작품은 임신부가 만지면 딸을 낳는다는 흥미로운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현대미술이 대중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흥미롭다”는 그의 말처럼 오토니엘의 작품은 우리에게 마법으로 다가온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로비에 설치된 그의 ‘아이보리 더블 목걸이(Ivory Double Necklace)’(2018)는 로비 천장부터 하단까지 길이가 15m에 달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옆 세계 최고의 유리공예 산지産地로 유명한 무라노 Murano섬에서 공수한 5백12개의 유리구슬을 엮은 작품이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유리의 매끄러운 질감보다 곳곳이 파여 마치 상흔이 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입은 상처를 비유해 그것을 치유하고 평안을 얻을 수 있게 하겠다는 컬렉터와 오토니엘 작품의 철학이 맞아떨어진 예라고 하겠다. 개인의 아픔을 작품에 녹여내며 치유의 나날을 보냈던 오토니엘. 작가가 지닌 내밀한 이야기의 공명은 많은 이들의 아픔마저 다독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상처받는 시대다. 오토니엘의 작품을 통해 잠시 시대의 아픔을 잊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