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탄 비행기는 미국 플로리다의 탬파를 이륙해 레게 뮤직의 발상지 자메이카로 향하고 있었다. 김건모의 ‘핑계’, ‘잘못된 만남’이 대한민국을 휩쓸 무렵이었다. 플로리다는 아름다웠다. 파도가 밀려오는 긴 해변에 붉은 기와를 얹은 저택이 끝없이 이어졌다. 모두 수영장이 딸리고 마당은 파란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흘러가는 미국의 꼬리는 지상낙원이라 할 만했다. 플로리다를 벗어난 비행기는 쿠바 상공에 진입했다. 항로는 쿠바섬 한가운데를 지나 남하했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집과 도로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그곳에 저택은 없었다. 산과 들은 짙은 녹음으로 덮였을 뿐 높은 곳에서도 가난은 뚜렷이 보였다. 그 풍경은 조금 전에 보았던 미국 땅의 풍요와 강렬한 대조를 이루었다. 두 번째 쿠바 인상은 그 나라를 다녀온 동료의 목격담이었다. 출장으로 쿠바에간 그는 해가 저물 무렵 수도 아바나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사내가 앞을 막아서더니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새겨듣고 보니, 매춘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곁에 선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아이는 사내의 딸이었다. 열서너 살밖에 안 된. 가장 최근의 쿠바 경험은 음악 다큐멘터리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1999)이다. 공중에서 볼 수 없었던 쿠바의 속살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황금빛 저녁 햇살이 번지는 아바나의 해안도로는 장엄해 보였으나 유럽풍 건물은 처참하게 낡았다. 공룡의 뼈대를 보는 것같았다. 뒷골목은 자동차의 무덤이다. 오래전에 멈춰 선 1940~50년대 자동차들이 그자리에서 삭아가고 있다. 글자 하나가 떨어져 나간 ‘KARL MA X(칼 마르크스)’ 간판을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이 무심히 바라본다. 담벼락에 쓴 구호 ‘Creemos En Los Sueños(우린 꿈을 믿는다)’를 보는 순간 아바나 거리의 부녀가 떠올랐다. 그 추레한 거리에 음악이 있다. 아프로-쿠반Afro-Cuban 뮤직이다. 아프리카의 리듬과 에스파냐 문화, 카리브의 삶이 녹아든 쿠바 음악은 중남미음악을 대표한다. 탁월한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찾아다니던 라이 쿠더는 1996년 아바나를 찾아가 옛 쿠바 음악명인들의 연주를 녹음했다. 단 6일간 진행된 작업은 좋았던 시절의 끄트머리를 낚아챈 것이었다.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군도는 무려 90세, 피아니스트 루벤 곤살레스는 78세였다. 그럼에도 노예술가들은 쿠바혁명 이전의 음악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음반은 세계적 히트를 기록했고, 2년 뒤 쿠더는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아바나를 다시 찾아가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메인 보컬 이브라힘 페레르의 솔로 데뷔 앨범. 74세인 2001년 발매됐다. 오마라 포르투온도와 함께 부른 ‘실렌시오’가 수록돼 있다.
‘쿠바의 냇 킹 콜’ 이브라힘 페레르가 여성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와 같이 부르는 ‘실렌시오(Silencio, 조용히)’가 서막을 연다. 최고의 가수였으나 혁명 후 구두닦이를 하던 페레르도 이미 70세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기회에 집중한다. 피아노와 기타, 아프리카 타악기, 에스파냐 류트가 애조 띤 선율을 짚어나간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감싸고 천천히 돌고 페레르와 포르투온도는 마주 서서 눈을 맞춘다. 그러나 ‘실렌시오’는 사랑 노래가 아니다. “내 뜰에는 꽃들이 잠들어 있네/ 흰 백합, 달맞이꽃 그리고 장미들/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 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 테니까/ …/ 내 눈물을 보면 죽어버릴 테니까.” 쿠바의 낡은 거리에서 노래하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런던과 암스테르담을 거쳐 1998년 뉴욕에서 공연한다. 무대는 카네기홀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브라힘 페레르는 휘황한 뉴욕의 밤거리를 걸으며 말한다. “이게 사는 거야. 사람답게 사는 거.” 그는 뉴욕이 처음이었다. 항상 와보길 꿈꾸었는데 마침내 그 거리를 걷고 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아내랑 아이들도 이 멋진 곳을 봐야 하는데….” 페레르가 가족과 함께 다시 뉴욕에 갔을까. 그는 2005년에 죽었다. 페레르의 뉴욕 산책을 보고 자메이카의 택시 운전사를 떠올렸다. 레게의 전설 밥말리 박물관 등을 돌아보고 멕시코로 가기위해 킹스턴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60대의 운전사가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난 태어나서 자메이카를 벗어난 적이 없다네.” 아득한 슬픔이 몰려와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쿠바 음악을 들으면 그 운전사가 생각난다. 죽기 전에 자메이카섬을 벗어나 다른 나라를 구경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