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가지 도자, 수만 가지 이야기
에드문드 드 왈
2019/9 • ISSUE 17
가장 오래된 예술인 도예를 통해 인류 역사를 추적하고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노래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만난다.
editorKim JihyewritorKim Jaeseok 갤러리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Q 도예 역사도 연구하고 있다. 〈20세기 도자의 역사(20th Century Ceramics)〉나 〈The White Road〉는 도예의 역사를 공부하는 초보자와 학생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속적인 리서치와 연구, 출판 활동은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A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하면 앞서 한길을 걸었던 사람들과 친밀함을 느끼게 됩니다. 12세기 중국의 도공, 점토를 만지는 고갱, 전후 일본에서 도자를 만든 이사무 노구치 등 저는 이들이 경험한 탐험의 즐거움을 발견했어요. 저의 설치 방식은 도예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18세기 유럽의 도자기실에서 영향을 받았죠. 또 한국의 달항아리를보며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Q 지난 5월, 베네치아에서 열린 개인전 〈시편(psalm)〉은 ‘망명(exile)’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A 이 전시는 베네치아의 유대인 박물관과 아테네오 베네토Ateneo Vento에서 열렸습니다. 유대인 박물관에는 11개의 진열창에 매우 얇은 금박을 입힌 자기와 반투명 백색 대리석 조각을 배치한 ‘Tehillim’, 보일 듯 말 듯 계단 벽 위쪽에 걸린 ‘Adonai’, 17세기 베네치아의 게토 지역에 살면서 시를 쓴 유대인 사라 코피오 술람을 위한 테이블 등을 전시했죠. 16세기에 지은 아테네오 베네토의 아름다운 빌딩에는 ‘망명의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조국을 떠나거나 망명한 사람이 쓴 52개국에서 모은 2천 권의 책을 전시했죠.
Q 같은 시기, 뉴욕에서는 ‘프릭 컬렉션’과 당신 작품이 ‘대화’를 시도하는 장소 특정적 설치 전시도 열렸다. 세월이 흘러 ‘살아남은’ 명작과 동시대 도자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서 어떤 점을 고민했나?
A 렘브란트의 후기 자화상, 티치아노의 ‘붉은 모자를 쓴 남자 초상화’, 두치오의 ‘광야에서의 유혹’, 엘그레코의 ‘성 제롬’ 등 존재감이 강한 서양미술사의 걸작과 함께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어요. 이 작품이 우리에게 컬렉션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죠. 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느긋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곳에 놓인 가구, 빛이 떨어지는 방식, 그리고 특정 작품, 컬렉션 전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작품을 설치했어요. 이런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난 특권입니다.
“저는 도자를 만들면서 성장했죠. 무수한 도자들은 제 유년 시절의 일부이자, 학창 시절과 여행, 독립을 위한 첫걸음을 함께했어요.
도자를 만드는 일은 제겐 숨쉬기와 같습니다.”
Q 짝을 이룬 자기는 서로에게 몸을 기댄 군중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시적인 아름다움과 멜랑콜리한 정서, 섬세한 음악적 떨림, 종교적 숭고함은 ‘치유’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작품에서 관객이 무엇을 보고, 경험하고, 느끼길 바라는가?
A 저는 결코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종종 도자는 손이나 신체의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도자 자체는 불완전하고 때로는 단편적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경험, 즉 망명이나 여행 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죠. 그리고 기쁨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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