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Drawing)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이 전시는 시작되었습니다. 다소 포괄적인 제목의 이 전시는 매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크로스 오버 작업이 성행하는 미술 현장에서 미술의 원초적인 묘미를 지닌 드로잉의 특성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전통적으로 드로잉은 작품제작의 시초로만 여겨졌지만, 근간에는 작업의 개념적 근간이 되고 예술가의 진솔한 삶과 감성, 그 안의 네러티브를 발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흔히 작가들 스스로 드로잉을 잘 하기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드로잉이 어떤 작업을 위한 준비 단계이기 이전에 독자적인 형식이면서 다른 매체로는 대체할 수 없는 내밀성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드로잉의 작업영역이 그린다는 개념을 넘어 점차 확장되고 있듯이, 이번 전시는 내용과 형식적 측면 모두를 특정 주제나 범주로 가두지 않고, 드로잉을 둘러싼 다양한 표현과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는 데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작품 중에는 1차적인 드로잉의 해석에 충실한 작품도 있고, 권혁, 김지민의 작품처럼 전통적 드로잉을 넘어 촉각적이고 입체적이며 공간 특수성을 염두한 실, 라벨로 만들어진 설치 드로잉도 있습니다. 윤대희의 아트북은 작가의 내밀한 감성, 세태를 반영한 암울한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면서 조형적인 완결성보다는 자유로움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질료의 힘, 순수성에 무게를 두어 생각의 흐름을 간결하게 표현한 허윤희, 오민수, 이진경의 작품들은 또 다른 축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민수는 관람객들과 작품 창작의 과정을 함께하면서, 상상과 해석을 통한 소통의 여지를 남겨두며,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기도록 합니다. 소박한 소재들을 즐겨 그리는 이진경은 현대인의 정서를 개인의 미시적 풍경에서 거시적 풍경으로 확장해갑니다. 허윤희는 목탄, 종이와 같은 단순한 질료로 드로잉에 집중하면서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조용하고 명상적인 시간을 선사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 그리는 대상의 거칠고 생생한 느낌이 종이 위에 되살아납니다. 작가는 그림과 지움의 과정을 통해 기억의 잔상이 켜켜이 쌓이는 목탄 작업 자체를 즐깁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예술가의 감성과 원초적 생각을 직접 보여주는 드로잉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내적 세계를 공감해보는 시간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드로잉을 접점 삼아 여기 모인 6인 작가들의 각기 다른 삶의 단면, 기억의 편린들을 우리 삶에도 비추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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