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세계갤러리는 추상회화를 전개하는 지역 출신의 작가 3인을 조망합니다. 이 전시는 2019년부터 갤러리가 개최해 온 추상유희 시리즈의 세 번째 기획입니다. 올해에는 장숙경, 정미옥, 윤종주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미술의 흐름 중에서도 기하학적인 형태(점, 선, 면)에 기반한 조형에 주목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발판이 되어 온 추상미술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지난 세기 초 서양에서 발흥한 추상미술은 대상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던 전통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조형요소의 최소단위인 점과 선과 면, 그리고 색에 준거하는 근원적인 시각 탐구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재현을 통한 환영의 창출 대신 솔직하고 순수한 형과 색의 절대적 미를 추구하는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작품 감상에 난해함을 느낄 수 있지만, 원초적인 조형원리로 돌아가 그 안에 깃든 의미를 살펴본다면 보다 본질적인 회화를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장숙경 작가는 삶의 생동성을 고유한 작업으로 인식하며 미적 세계를 넓혀왔습니다. 작품 속에 펼쳐진 동그란 원의 형상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그 자취를 따라 시선을 유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변칙적으로 뒤섞여 독특한 시각적 흐름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작품의 주 재료인 종이와 흑연의 물성에 대하여 지속적인 탐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탐구의 지향점은 아교나 픽사티브 같은 중간 매개 없이 종이가 수용할 수 있는 흑연의 재료 특성의 극단을 향해 있습니다. 이런 모색은 더 나아가 정적인 사유를 미술 창작 행위에 안착시키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미옥 작가의 작업은 기존에 이미 존재해 왔던 여러 조형적 기호를 차용하여 다층적으로 재구조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모더니즘의 기하추상 형식이나 미니멀 아트의 반복성, 옵아트의 착시현상 같은 요소가 작품에 얽히고, 침투하고, 짜집기 되는 일련의 결합을 통해 작가만의 의미형식으로 재편성됩니다. 줄무늬라는 텍스트가 미묘한 차이를 두고 다른 각도, 다른 색채, 다른 층위를 통해 반복되어 산출하는 환영성은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곧고 딱딱하고 긴장되는 특성을 가진 기하학적 조형을 재구조화 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재미를 통해 의미를 공유”하는 새로운 유희적 감성 코드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색면을 통하여 드러나는 윤종주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오묘하고도 색다른 인상을 전달합니다. 상하좌우가 없는 올오버(all over) 단색화로 색면 구조를 만들어 내는 작품은 일반적인 회화의 방식과 달리합니다. 작가는 붓으로 그리는 행위에서 탈피해 표면의 물성에 주목하여 자신만의 평면 회화를 구축해나갑니다. 직접 조색한 물감의 입자를 균질하게 만든 후 캔버스에 붓고 기울이고 말리는 과정을 20~30번 반복한 결과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색의 깊이, 색을 통한 공간감, 빛선이라는 핵심 요소들을 드러냅니다.
이들의 추상회화는 서로 다른 형식적 실험으로 자리매김한 작업입니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도상의 감각 이외에, 추상의 의미를 좀 더 진전하여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장숙경의 작업은 주로 점의 조형으로 환원하려는 성격을 보여줍니다. 정미옥의 환영적 공간 설정은 선의 요소에서 시작하며, 윤종주의 회화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제안되는 색과 면의 순수성 자체입니다.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표현방식의 경계를 허물고 점, 선, 면의 추상을 새롭게 유희하고 감각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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