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과 70년대를 풍미했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은 미술작품의 창작에 있어서 개념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한 인물이다. 1928년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난 르윗은 49년 시라큐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6.25 전쟁 당시, 1년간 한국에서 포스터 제작 및 선무작업을 하며 복무하기도 한 그는 53년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으로 건너간다. 한동안 저명한 건축가 I. M. 페이의 사무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기도 하고, 1960년에서 65년까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안내창구에서 일하는 등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현대미술에 눈뜨게 된 르윗은 이 시기 비평가 루시 리파드를 비롯하여 로버트 맨골드, 로버트 라이먼, 댄 플레이빈 등 훗날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가들과 교우하게 된다. 미니멀리즘은 전통적인 미술이 추구하던 재현과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감성을 떠나 작품을 선, 색, 면 등의 기본적 조형체로 이루어진 구조물로 환원시키려 했다. 공업재료의 사용, 규칙적인 반복을 통한 시각적 질서와 작가의 개입이 최대한 배제된 기계적 과정 등 미술의 아우라를 벗어나 탈주관주의적 성향을 보인 미니멀리즘은 이후 르윗이 개입하게 되는 개념미술과 더불어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을 해체하는 중요한 미술사의 계기로 등장했다. 1965년 그리드(grid 격자틀)형의 개방형태 모듈작업으로 시작된 르윗의 탈주관주의는 1967년, 개념미술의 선언서나 다름없는 글 “Paragraphs on Conceptual Art”를 발표하며 본격화됐다. 그에게 작가란 개념의 생산자이며 실제의 작품제작은 그 개념의 확인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68년 이후 시작된 르윗의 벽면 드로잉 작업 역시 이런 철학을 반영한다. 기초 삼원색과 흑백, 원, 사각형, 피라밋 모양 등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진 벽면 드로잉작업은 르윗의 작업지시문에 기초하여 주로 작가의 조수나 타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업의 결과는 작품이 제작되는 환경과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변수들, 그리고 전시공간에 들어오는 관람객들의 역할로 인해 작가 개인의지의 반영을 넘어 공동체의 몫으로 돌아간다.이지은(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