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HOCKNEY
이제, 그림으로 살다
전통 회화, 원근법과 시점에 대한 집요한 실험이 돋보이는 포토콜라주 작업 ‘조이너스’,
그리고 일흔이 넘어 아이패드로 그린 디지털 드로잉까지.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은
여전히 우리에게 일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순간을 선물한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북부 요크셔의 공업도시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났다.
매연이 하늘을 덮고 비가 잦은 회색 도시였다.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아버지 케네스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고,
반핵 시위에 나가 피켓을 들던 진보적 인물이었다.
아들은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자전거를 색색으로 칠하던 아버지에게서 평생의 교훈을 얻었다”라고 회고했다. 탈색한 금발, 동그란 안경, 짝짝이 양말은 그 교훈에 따른 복장이었다.
호크니는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졸업을 앞두고 논문 제출을 거부했다.
화가는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버텼다.
학교는 규정을 들이댔고 그는 붓을 들었다.
결국 RCA는 1962년 그에게 금메달과 졸업장을 안겼다.
호크니는 금메달에 맞춰 금빛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회색 도시에서 온 청년은 그렇게 스스로를 채색하는 법을 깨우쳤다.
1964년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햇빛을 찾아 떠난 곳에서 그는 물빛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그림자마저 밝혔다.
안개 낀 런던에서 숨겨야 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뒷마당마다 널려 있었다.
수영장,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잔디, 유리로 지은 집, 야자수, 볕에 그을린 청년들.
빛의 도시 속 선명한 색감을 표현하고자 갓 시판된 아크릴물감을 선택했다.
이윽고 물을 그리는 일에 빠져든 화가에게 물은 조형적 난제였다.
형태가 없고, 투명하고, 쉼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물은 춤추는 선이 되고, 구불거리는 무늬가 되고, 흰 물보라가 됐다.
빛과 물과 유리, 이런 잡히지 않는 것들을 잡는 일이 그의 회화적 모험이 됐다.
특히 1967년 작 ‘더 큰 첨벙’에서는 물에 몸을 던질 때 나는 ‘첨벙’ 소리가 들리고 팽팽한 적막까지 느껴진다. 호크니는 2초만에 사라지는 찰나를 2주에 걸쳐 작은 붓으로 그렸다.
화가로서 그는 이 시간 쌓기를 사랑했다.
writer Cho Sangin 아트 칼럼니스트 editor Kim Minhyung
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
Acrylic on canvas 213.36 × 304.8cm ©David Hockney
Photo Credit :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 Jenni Carter
" 호크니는 아는 사람만 그렸다. 초상은 얼굴의 기록이 아니라 관계의 퇴적이라 믿었다. "
초상화 속 시간과 관계
그의 작품에서 시간이 쌓여야 하는 것은 물 그림만이 아니다. 초상화는 더욱 그러하다.
호크니는 아는 사람만 그렸다. 초상은 얼굴의 기록이 아니라 관계의 퇴적이라 믿었다.
1970~1971년 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가 대표적이다.
패션 디자이너 오시 클라크와 텍스타일 디자이너 셀리아버트웰은 호크니가 결혼식 증인까지 섰던 절친한 부부다.
역광의 창을 사이에 두고 아내는 서 있고 남편은 앉아 있다. 남편 무릎 위 흰 고양이는 등을 돌려 창밖을 본다.
부부는 서로를 보지 않는다. 이 결혼은 몇 해 뒤 파경을 맞았다.
그 서늘한 긴장까지 껴안은 그림은 테이트 미술관에 걸려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초상화 중 하나가 됐다.
호크니는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 그 팽팽한 공기를 그렸다.
실물 크기의 두사람을 한 화면에 앉히고 그 사이의 침묵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연작은 20세기 초상화의 문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그의 집요함은 평생 이어졌다.
2016년 런던 왕립예술원의 전시 <82인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에서 그는 지인 82명을 한 사람당 사흘씩,
같은 의자에 앉혀 그렸다. 그에게 초상화란 결국 시간의 그릇이었다.
조이너스, ‘보는 이’의 고유한 세계
1980년대의 호크니는 카메라와 씨름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거실 사진을 이어 붙이던 그가 별안간 무릎을 쳤다.
사진 한 장은 한순간에 불과하나, 수십 장을 연결하면 시선이 움직인 시간 전체가 화면에 들어온다.
그는 포토콜라주를 ‘조이너스(joiners)’라 불렀다.
1986년 작 ‘피어블로섬 하이웨이’는 사막의 교차로를 여러 날에 걸쳐 7백 장 넘게 찍어 붙인 대작이다.
표지판, 도로, 길가의 쓰레기 등을 제각기 다른 자리에서 본 모습을 표현했다.
소실점은 없다. 그는 소실점을, 보는 사람을 한자리에 박아두는 못이라 여겨 원근법을 감옥이라 불렀다.
소실점의 못을 뽑아낸 순간 그림 속에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Tyler Graphics Ltd.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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