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추상의 외길
지금, 유영국의 작품 세계가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온다. 5월 19일부터 10월 2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열린다.
writer Kim Jaeseok 아트 저널리스트
ARTIST PROFILE
유영국 YOO YOUNGKUK 1916~2002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에서 수학하며 전위미술 단체와의 교류를 통해
추상미술에 대한 조형 감각을 키웠다. 1943년 귀국한 후에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 등 한국 현대미술 단체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64년 이후에는 산과 자연의 이미지를 기하학적 형태와 색면으로 재구성한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국내외 전시를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점·선·면·색의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한 절제된 화면 구성과
강렬한 색채대비는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1964년 11월 14일,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한 전시가 열렸다. 바로 유영국의 첫 개인전이다.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으니 당시 작가의 나이는 마흔아홉. 동시대 작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개인전이었다.
전시장에는 100호가 넘는 대형 회화 열다섯 점이 걸렸다.
제목은 단순하게도 모두 ‘작품(Work)’. 화면은 강렬한 색면과 명확한 구조가 맞물리며 독특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한 신문은 전시 리뷰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화면’이라 표현하며 그를 ‘색채의 연마사’라 칭송했다.
이 전시는 한 작가의 늦은 데뷔라기보다 오랫동안 축적된 회화적 사유가 비로소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에 가까웠다.
개인전 이전까지 유영국의 에너지는 미술 운동에 더 많이 쓰였다. 그는 1956년 모던아트협회, 1962년 신상회 등
여러 전위 그룹을 조직하고 전쟁 이후 황폐해진 한국 미술계에서 새로운 미술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겠으면 그래라, 나 좋아서 한다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 그는 당시 가장 급진적인 미술 경향이었던 추상미술을 접하게 된다.
무라이 마사나리와 하세가와 사부로 등 일본 주요 추상미술 작가들과 교류하며 기하학적 조형 언어를 익혔다.
이 시기의 작업은 베니어판을 잘라 붙여 구성한 부조 형태의 실험적 작품들이었다.
색채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구조와 질감만으로 화면을 조직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또한 N. B. G(Neo Beaux-Arts Group)의 동인으로 참여하며 동료들과 함께 예술 운동을 조직하는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1943년 귀국한 후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는 울진에서 어부로 일했고, 생계를 위해 양조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과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 미술계의 전위적 움직임을 이끌던 그가 어느 순간 “그룹 활동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선언과 함께
추상으로의 ‘외길’을 걷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작가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국전에서도 ‘이게 그림이냐’라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지만 그러겠으면 그래라, 나 좋아서 한다는 마음으로 이 길만 걸었어요.”
개인전 이후 그의 작업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꾸준했다.
약 두 해 간격으로 개인전을 열며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고, 생애 동안 열다섯 번의 개인전을 이어갔다.
editor Kim Minhyung
국전에서도 ‘이게 그림이냐’라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지만 그러겠으면 그래라,
나 좋아서 한다는 마음으로 이 길만 걸었습니다.
Yoo Youngkuk, Work(Sea), 1958, Oil on canvas, 101×101cm
©Yoo Youngkuk Art Foundation. Courtesy of PKM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