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브네의 예술적 요새
미국 뉴욕의 역동적 삶을 뒤로하고 고향 프로방스의 품으로 돌아온 개념 미술의 거장 베르나르 브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던 대형 산업 부지를 안식처이자 예술의 정수를 담은 갤러리, 거대한 예술적 실험실로 탈바꿈시켰다.
베르나르 브네의 2014년 작 ‘불확정 선의 태피스트리(Tapis en ligne inde`termine`e)’와
프랑수아 모를레(Franc¸ois Morellet)의 2006년 작 ‘라망타블(Lamentable)’이 하나의 리듬으로 공존하는 장면
writer Gye Anna, Tiqui Atencio Demirdjian editor Kim Minhyung photographer Jean François Jaussaud
예술가의 집을 다룬 기사는 대개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를 복제한듯 정적이고 박제된 풍경을 내놓곤 한다.
오차 없는 탐미주의가 설계한 그 완벽한 질서 앞에서, 우리는 그곳이 누군가의 숨결이 머무는 일상의 영토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그러나 개념 미술의 거장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는 이 견고한 전형성을 기분 좋게 배반한다.
그의 무대는 프로방스의 외딴 마을 르 뮈(Le Muy)의 버려진 옛 제분소와 녹슨 철도 공장이다.
그는 남프랑스의 가차 없는 태양 아래 방치되었던 이 거친 산업의 폐허를 갤러리와 기념비적 조각 공원,
그리고 부부의 내밀한 안식처가 공존하는 입체적 세계로 탈바꿈시켰다.
빈손에서 시작한 예술
“공장과 노동이 삶의 전부였던 가족에게 예술은 너무도 먼 나라 이야기였죠.”
거장은 무채색이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담히 돌이켰다.
그런데 열한 살 어느 날, 학교 미술 시간에 발견한 작은 재능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아들의 남다른 손길을 알아본 어머니는 도시 화방으로 소년의 손을 이끌었고,
그곳에서 처음 펼쳐본 르누아르 화집은 소년의 가슴에 예술이라는 불씨를 지폈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예술의 도시 니스로 향한 그는 오페라극장의 무대 디자인을 맡고
군 복무를 거치며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발견한다.
캔버스 전체를 시커먼 타르로 덮어버린 ‘검은 타르 회화’가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형태도, 크기도 정해지지 않은 채 놓이는 공간에 따라 제각각 모습을 바꾸는
이 파격적 작업은 미술계를 향한 당돌한 질문이었다.
현대미술의 전설 마르셀 뒤샹 앞에서 “내작업이 더 혁명적”이라고 외쳤을 만큼
청년 베르나르 브네는 예술의 뿌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1966년에 그린 수학 함수 회화 ‘y=-x^2/4’를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인 작품으로 꼽는다.
“그 방정식이 수학적 회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죠.
이때부터 ‘선(line)’이 제 작업의 운명적 주인공이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966년, 그는 예술의 새로운 심장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곳에서 그는 도널드 저드, 솔르윗, 리처드 세라 등 당대 가장 급진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수학과 과학적 언어를 예술의 전면에 내세운 개념 미술의 개척자로 우뚝 섰다.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조각 옆에 선 베르나르 브네.
아르망, 세자르(Ce`sar) 등 뉴욕 시절 함께한 동료들의 작품으로 둘러싸인 공간
"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곳은 나의 집이자, 뇌 구조 그 자체입니다. "
모두를 위한 아트 컬렉션
2014년 공식 설립된 브네 재단은 갤러리, 기록 보관소, 거주 공간과 17 에이커(약 68,796m2)가 넘는 조각 공원을 포함한다.
“땅을 조금씩 사들여 확장했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다시 지었죠. 내 모든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이 공간은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요.” 프로방스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거대한 대지는 브네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뜨거운 우정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스물둘, 니스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수집은 단순한 소유욕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는 동료들의 작품이 벽면을 장식하는 소품을 넘어 인류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위대한 유산임을 직감했다.
그는 명성을 얻은 뒤에도 안락한 삶 대신 예술가의 혼이 담긴 작품을 사는 길을 택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사회로부터 온 것이기에, 기꺼이 돌려주고 싶었죠.”
아르장 평원의 곡선과 강철의 각도가 만난 풍경은 예술적 서사가 계속되어야 함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이 장소를 발견한 것은 1980년대 초, 브네의 상징인 ‘불확정적인 선(Indeterminate Lines)’이 세상에 나올 때다.
작품의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육중한 쇳덩이들을 품어줄 너른 대지가 간절해졌다.
그는 고향 남프랑스에서 해답을 찾았고, 운명처럼 17세기 제분소 ‘물랭 데세르(Moulin des Serres)’와 마주했다.
처음 그곳을 보았을 때의 전율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둡고 낡은 건물이었지만, 높은 천장과 거대한 창으로 쏟아지는 빛, 육중한 기계를 견뎌낼 견고한 바닥은 그가 꿈꾸던 완벽한 실험실이었다.
브네는 직접 디자인한 강철 가구와 순백의 벽면으로 내부를 채워 넣었다.
고풍스러운 목재 구조와 차가운 강철의 대비는 그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곳은 저의 집이자 뇌 구조 그 자체입니다.”
80세가 넘은 거장의 목소리엔 여전히 창작을 향한 집념이 서려 있다.
대중의 발길이 닿지 않는 부부의 사적 안식처는 조각 공원보다 더욱 비범한 조우를 선사한다.
식당 벽면은 솔 르윗의 벽화로 채워졌고, 그가 주문한 대로 바니시를 수차례 덧칠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침실로 향하는 복도는 댄 플래빈(Dan Flavin)의 빛이 밝히고 있으며, 부부의 잠자리를 지키는 침대는 도널드 저드의 작품이다.
거실 한편,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의 거대한 캔버스 앞에는 과거 뉴욕 스튜디오를 공유했던 아르망(Arman)이
그를 위해 맞춤 제작한 ‘쓰레기통’이 투명한 케이스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