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이너 론 아라드의 실험적 공간
런던 북부의 집과 스튜디오에서 삶과 작업을 병행하며, 곡선·재료·호기심으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세계적 디자이너 론 아라드를 만났다.
1995년 선보인 카르텔의 북웜(Bookworm) 프로토타입 앞에 론 아라드와 손자 마일로가 앉아 있다.
writer Anna Gye, Anna Bisazza editor Kim Minhyung photographer Monica Spezia
공간 한편에는 그의 작업 샘플이 오브제처럼 진열되어 있다.
런던 북부의 조용한 주택가.
론 아라드(Ron Arad)는 이곳에서 오래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서 무언가를 만든다.
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영국 디자인을 바꿔놓은 인물’이라는 설명은 정보가 아니라 감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엄밀히 말해 이곳은 세월과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호기심과 감각마저도 아티스트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예술가의 공간이다.
사용한 흔적이 켜켜이 쌓인, 철저한 생활의 장소.
드문드문 이 곳에 밴 흔적은 작업에 자연스레 묻어나 아티스트의 작업실, 사적인 공간의 궤를 경계 없이 잇는다.
론 아라드라는 세계적 디자이너
거대한 돌처럼 둔탁하면서도 곡선미를 강조하는 독특한 형태의 가구들.
론 아라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알다시피 론 아라드는 1980년대부터 디자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쳐온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그의 작품은 독창적 형태와 접근 방식, 실험적인 재료 사용으로 유명하며, 현대 디자인의 경계를 넓힌것으로 평가받는다.
유기적이면서도 대담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그는 가구가
단순히 기능적 도구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형성하는 하나의 예술적 요소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라드는 가구 디자인 외에도 알레시, 프리츠한센 등 유명한 디자인 브랜드와 협업해 여러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러프&레디’ 시리즈는 재활용 철강과 같은 산업적 재료를 사용해 대담하고 강렬한 형태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그의 실험적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직감으로 이어온 삶
1973년, 스물두 살의 그는 텔아비브를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그 시절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런던은 현실보다 영화 속 장면에 가까웠다.
영국이 세계 다른 어떤 곳보다 예술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던 20대 청년의 패기 넘치는 시선을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그 이동은 치밀한 계획이 아닌 직감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직감은 결국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는 선택이 된다.
화가 어머니, 조각가 아버지, 음악가 형제들 사이에서 자란 그에게 창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업’처럼 여겨졌다.
그는 예루살렘의 베잘렐 예술 아카데미(Academy of Arts Bezalel)에서 공부한 뒤 런던으로 건너와 건축협회학교에 들어갔다.
포트폴리오 대신 연필 하나를 들고 입학위원회 앞에 섰다는 일화는, 지금의 론 아라드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정해진 규칙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한 발 비켜 서서 구조를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는 태도는 이미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규칙은 론 아라드가 따르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전업 건축가의 길을 택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건축 규정과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대신,
그는 예술이 허용하는 무한한 여지 속에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명확한 정의가 아니라 열려 있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자연스럽게 그의 디자인 전반에 스며들었다.
1989년 한계 없는 창조성을 위해 캐럴라인 소먼과 함께 론 아라드 어소시에이츠(Ron Arad Associates)를 설립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피아노 공간을 개조한 그의 스튜디오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잡동사니로 가득 찬 곳”이 되었다.
프로토타입과 모형, 완성된 작품들이 뒤섞인 공간은 ‘통제된 혼돈’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