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FT OF LIGHT
하이 주얼리에서 세공법은 스톤을 고정하는 기법을 넘어 주얼리의 구조와 인상, 움직임을 결정하는 핵심 언어다.
같은 보석이 전혀 달라 보이는 이유는 각 메종이 선택한 세공 방식에 있다.
writer Seo Jay〈드림즈〉 편집장 editor Yu Jieun
루이 비통 버츄어시티 하이 주얼리 컬렉션 중 아포제 네크리스. 30.75캐럿의 브라질산 페어 컷 에메랄드 세팅.
LOUIS VUITTON
메종이 추구하는 구조적 아름다움
루이 비통은 보석을 얹기 전에 먼저 형태가 어떻게 분리되고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계획한다. 그 결과 주얼리는 하나의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변형 가능한 입체적 형태로 완성된다. 버츄어시티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아포제(Apoge´e) 네크리스에서 드러나는 세팅 방식은 이러한 접근을 분명히 보여준다. 마디 단위로 분절된 플래티넘과 화이트 골드 소재의 아키텍처형 프레임은 각 요소가 유연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되 전체 균형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디자인됐다. 네크리스의 중앙 상단에 10.56캐럿 LV 모노그램 스타 컷 다이아몬드를 배치해 메종의 시그너처 컷을 조형의 축으로 고정하고, 그 아래에는 30.75캐럿의 브라질산 페어 컷 에메랄드를 더해 컬러 스톤의 중량감을 또렷하게 대비시킨다. 세팅의 디테일 또한 주목할 만하다. 에메랄드의 팁을 감싸는 V자형 다이아몬드 모티브와 로프처럼 엮인 구조는 루이 비통 트렁크 핸들과 LV 이니셜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한 디테일로, 서로 층을 달리한 면 분할이 빛의 반사를 극대화한다. 다이아몬드는 금속이 스톤을 견고하게 감싸는 클로즈드 세팅을 적용했지만, 전체 디자인은 오픈워크 구조를 택해 볼륨 대비 무게를 줄이고 착용감을 개선했다. 하단의 에메랄드 펜던트는 분리해 단독으로 착용할 수 있는 트랜스포 머블 구조로, 반복적인 탈착과 움직임에도 흔들림 없는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돋보인다. 이러한 기술적·조형적 성취는 2025년 모나코에서 열린 제1회 그랑프리 드 라 오뜨 조알러리(GPHJ) 젬스톤 프라이즈 수상으로 공식적으로 평가받았다.
아포제 네크리스 세공 과정.
TIFFANY&CO
하우스의 위대한 유산, 티파니 세팅
1886년 탄생한 티파니 세팅은 다이아몬드를 가능한 한 높은 위치로 들어 올려 사방에서 빛을 받아들이도록 설계한 구조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세팅의 기준이 되었다. 6개의 프롱이 메인 스톤을 정교하게 지지하는 헤드는 측면·하부를 비워낸 오픈 갤러리와 바스켓 구조를 통해 빛이 테이블과 파빌리온 면에 고르게 투과되도록 한다. 그 결과 스톤은 공중에 떠 있는 듯 아름답게 드러나며, 형태와 광채를 극대화하는 티파니의 세팅 철학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원칙은 단일 스톤을 넘어 하이 주얼리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파베 세팅과 컬러 스톤을 리드미컬하게 배열한 해마 퍼플 사파이어 네크리스에서도 프롱은 스톤을 지지하는 기능적 구조로 작동한다. 빛의 통로를 확보하는 오픈 구조는 복잡한 세팅 디자인 속에서도 각 스톤이 광채를 최대한 발산하도록 돕는다. 이는 제작 과정에서 세공사가 각 스톤의 크기와 비율, 배열 간격을 미세하게 조율해 전체적인 균형과 리듬을 완성한 덕분이다.
(왼쪽부터)
전설적인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버드 온 어 락 브로치.
128.54캐럿의 쿠션 컷 옐로 다이아몬드와 루비,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해마 퍼플 사파이어 네크리스.
총 11캐럿 이상의 라운드 카보숑 사파이어 22개, 총 6캐럿 이상의 라운드 카보숑 문스톤 27개, 총 50캐럿 이상의 오벌
카보숑 문스톤 60개, 총 68캐럿 이상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9백80개 세팅.
BOUCHERON
자연의 찰나를 포착한 장인 정신
부쉐론은 까르뜨 블랑슈 하이 주얼리 컬렉션 임퍼머넌스에서 꽃과 곤충, 식물이 사라지기 직전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세팅을 단순한 고정 장치가 아닌 지지 구조로 재정의한다. 금속 위에 다이아몬드를 얹는 대신 유리, 세라믹, 티타늄, 알루미늄 같은 비전통적 소재를 사용해 자연의 유연함과 불균형 속 조화를 표현한다. 이러한 태도는 이스뚜아 드 스틸 하이 주얼리 컬렉션,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서 보다 명확한 세공 언어로 이어진다. 분절된 링크, 스프링 시스템, 깊게 파낸 오픈워크는 장식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착용 시 발생하는 미세한 움직임과 무게를 흡수하기 위한 장인적 해법이다. 임퍼머넌스가 자연의 소멸 순간을 감각적으로 응시한 컬렉션이라면,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은 그 생명력을 세공 기술로 연장하는 시도다.
(왼쪽부터)
이스뚜아 드 스틸 하이 주얼리 컬렉션 중 푸시아 브로치와 시클라멘 링.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 세팅.
까르뜨 블랑슈 임퍼머넌스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화이트 골드 연마 과정.
VAN CLEEF&ARPELS
보이지 않는 구조의 미학
반클리프 아펠의 주얼리는 금속보다 보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메종은 “보석을 지탱하는 금속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보석만이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여야 한다”는 미학에 따라 세공의 출발점을 달리한다. 일반적 주얼리가 디자인에 맞춰 스톤을 선별하고 맞춰 넣는 방식이라면, 반클리프 아펠은 스톤에 맞춰 디자인과 세팅을 계획한다. 이런 철학이 구현된 것이 ‘미스터리 세팅’으로, 금속이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 스톤을 떠 있는 듯 고정해 순수한 색과 광채만 남기는 세팅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구조’에 대한 집착은 프리볼과 루도 브레이슬릿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볼 링의 꽃잎은 세 단계에 걸친 미러 폴리시를 통해 거울처럼 매끈한 18K 골드 표면을 완성했고,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부분 역시 뒷면에 오픈워크 구조를 적용해 빛이 통과하도록 해 반짝임을 극대화한다. 루도 브레이슬릿은 벌집을 연상시키는 작은 골드 모듈을 하나하나 관절 구조로 연결해 직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착용감을 선사하는데, 각 육각형 모티브 중앙의 별 모양 패턴과 다이아몬드 세팅이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규칙적으로 빛을 나누어 보석만이 떠 있는 듯한 리듬감을 만든다. 결국 미스터리 세팅에서 출발한 스톤의 빛과 컬러를 극대화하는 원칙은 프리볼의 미러 폴리시 골드 꽃잎과 루도의 유연한 메시 구조에까지 스며들어, 서로 다른 타입의 주얼리 위에서 메종 특유의 보이지 않는 구조의 미학을 드러낸다.
(왼쪽 두 번째부터)
프리볼 링. 18K 로즈 골드와 다이아몬드 세팅.
루도 브레이슬릿. 18K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 오닉스 세팅.
PIAGET
골드 세공의 정수, 데코 팰리스
보석보다 금속의 존재를 먼저 각인시키는 피아제. 여러 층의 레이어로 이뤄진 골드의 면과 볼륨이 수작업 특유의 매력을 자아내는데 이는 비단 장식이 아니라 단단한 형태의 오브제가 된다. 프롱이나 베젤은 최소화되고, 파베 세팅 역시 절제된 방식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피아제의 보석은 구조 속에서 과장 없이 조화를 이루며 반짝인다. 이러한 골드 중심의 세공 철학은 아이코닉 컬렉션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1960~1970년대의 커프 워치와 소투와르 그리고 에센스 오브 엑스트라레간자 컬렉션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그 위에 스톤이 더해진다. 시그너처 골드 인그레이빙 기법인 데코 팰리스는 다이아몬드, 컬러 스톤과 어우러져 구조를 따라 빛을 조율하며, 전체 조형의 균형을 정교하게 완성한다.
(왼쪽부터)
데코 팰리스기법 세공 과정.
골드 체인세공 과정.
에센스 오브 엑스트라레간자 이어링. 18K 로즈 골드, 탄자나이트, 블랙 오팔, 다이아몬드 세팅.
BVLGARI
미학과 최첨단 기술의 산물, 투보가스
1940년대 산업용 가스 파이프에서 영감받은 투보가스 기법은 땜이나 프레임 없이 금속을 나선형으로 말아 올려 형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투보가스 네크리스와 링에서 다이아몬드는 중심을 차지하지 않고 형태를 강조하는 흐름의 일부로 배치되며, 금속의 곡선과 라인을 따라 빛을 덧입힌다. 개별 프롱 세팅보다는 채널 세팅에 가까운 배열을 통해 나선형 금속의 연속적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석은 고정된 장식이 아니라 구조와 함께 움직이며 몸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그래서 단단한 오브제처럼 보이면서도 착용하는 순간 유연하게 변한다.
(왼쪽부터)
불가리 세르펜티 투보가스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버프 톱 에메랄드 0.27캐럿과 15.95캐럿의 다이아몬드 파베 세팅.
나석 검수 과정.
GRAFF
섬세한 공정으로 탄생한 완벽함
그라프의 하이 주얼리에서 세팅은 이미 완성된 스톤의 존재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메종은 디자인에 앞서 원석의 선별과 커팅, 연마 과정까지 직접 관리하며, 세팅은 그 결과물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조율로 작동한다. 트라이벌 컬렉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기하학적 모티브와 곡선의 리듬은 다이아몬드가 만들어내는 빛의 흐름과 무게를 시각적으로 정돈된 인상으로 보여준다. 타원형과 마퀴즈, 라운드 컷을 조합한 트라이벌 특유의 반복 구조에서는 파베 세팅과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를 균일한 간격으로 배열해 면과 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이때 세팅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각 스톤이 동일한 높이와 각도에서 빛을 받아들이도록 세심히 배치된다. 금속의 두께와 파베 간격의 균일함은 다이아몬드 표면이 끊기지 않고 하나의 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러한 배열 방식은 시각적 효과뿐 아니라 착용 시 무게 분산에도 영향을 미쳐 대형 하이 주얼리 피스에서도 안정적 착용감을 유지해준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확장되는 구조적 디자인 역시 스톤의 크기와 간격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이어지도록 균형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