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현대, 일상과 예술의 도시 팔레르모
팔레르모는 한 시대의 모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머무름과 건축, 거리와 창작이라는 4개의 키워드를 통해, 이 다층적인 도시를 차근히 들여다본 4일간의 기록.
writer Gye Anna editor Lee Jungwook photographer Alberto Alicata
도시의 결을 따라 천천히 파고드는 여행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서쪽 끝, 팔레르모는 첫인상으로는 쉽게 마음을 허락하기 어려운 도시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 피부를 찌르는 태양, 거친 골목 풍경은 낯설고 어지럽다. 하지만 잠시 멈춰 머무는 순간, 이 도시는 조금씩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낡고 투박한 외관 아래엔 우아하고 예술적인 결이 숨어 있다. 도시 전체가 오래된 시간을 담고 있으면서도 새로움을 품고 움직인다. 2018년 ‘이탈리아 문화 수도’로 선정된 이후 변화는 더 뚜렷해졌다. 골목마다 젤라테리아와 아틀리에가 들어섰고, 오래된 팔라초는 다시 사람의 온기로 되살아났다. 미국 드라마 <화이트 로투스> 방영 이후 젊은 창작자들이 이주하면서 도시의 색깔도 달라졌다. 전통을 토대로 실험을 이어가는 셰프, 시칠리아 감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디자이너, 그들이 써 내려가는 오늘의 팔레르모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진정 특별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과일 한 줌을 건네는 골목의 할머니, 와인 한 잔과 함께 삶을 나누는 바의 주인처럼 팔레르모는 언제나 낯선 이를 자연스럽게 품어낸다. 이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대단한 계획도,
화려한 명소도 아니다.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걸으며 길 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팔레르모는 어느새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는다.
매장에서 만나요
DAY 1 머물고 맛보며 경험한 팔레르모
팔레르모 여행은 어디에서 머무느냐로부터 시작된다. 포르타 펠리체와 빌라 줄리아 사이,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팔라초들이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다시 태어났다. 외관은 고풍스럽고 웅장하지만, 그 안에는 절제된 현대적 감각이 녹아들어 시칠리아 특유의 정취와 세련된 감성이 공존한다. 이곳에 머문다는 건 단순히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시칠리아인의 삶과 리듬에 스며드는 일이자 공간과 시간, 사람 사이를 오가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대부분의 팔라초는 거주 중인 주인이 직접 운영하며 조식을 제공하는 비앤비 형태로, 아침이면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에스프레소 향을 따라 손수 차린 식탁을 마주하게 된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앉아 갓 구운 빵과 과일, 치즈 등을 나누는 순간, 여행자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환대를
받는 손님이 된다. 그 정성은 팔레르모가 품은 온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칠리아 음식은 이탈리아 어느 지역보다도 다채롭고 대담하다. 재래시장인 카포, 부치리아, 발라로의 좌판에서는 투박하지만 정직한 전통의 맛을, 감각적인 레스토랑에서는 오늘의 시칠리아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미쉐린 스타를 받은 이 푸피와 리무, 그리고 메크·가지니 레스토랑은 재료에 대한 애정과 정교한 기술, 시칠리아다운 감정이 깃든 맛으로 여행자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팔레르모의 하루는 그렇게, 낯설지만 친근한 식탁에서 시작되고, 또 끝난다.
HOTEL 로텔레리 비앤비
세련된 인테리어와 테라스를 갖춘 도심형 부티크 호텔
CONTACT www.instagram.com/lhotellerie_easy_suites/
PALACE 팔라초 드라고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역사적 귀족 저택
CONTACT www.instagram.com/palazzo_drago_airoldi/
RESTAURANT 가지니 레스토랑
전통 시칠리안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쉐린 다이닝 맛집
CONTACT www.instagram.com/gaginirestaurant/
RESTAURANT 멕 레스토랑
감각적 플레이팅이 돋보이는 시칠리안 요리로, 미슐랭 1스타 코스
CONTACT www.instagram.com/mec.palermo/
DAY 2 햇빛에 물든 아치 아래서, 오래된 도시를 읽다
팔레르모의 건축은 도시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수 세기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남았고, 그 결은 지금도 건축물 곳곳에 살아 있다. 무어 양식, 비잔틴의 금빛 모자이크, 노르만의 구조미가 교차하며 형성된 아랍-노르만 양식은 팔레르모의 정체성을 이룬다. 이 도시의 건축을 이해하는 길은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돌의 질감과 빛의 흐름을 느끼는 과정에 가깝다. 포르타 누오바에서 팔라초 데이 노르만니, 대성당, 코르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를 지나 콰트로 칸티로 이어지는 길엔 중세와 바로크가 겹치는 도시의 시간이 돌에 각인돼 있다. 산타 카테리나 수도원과 라 마르토라나, 비아 마케다 보행자 거리 구간은 돌의 섬세함과 채광의 미학이 만드는 고요한 장면을 선사한다. 부서진 벽면과 쓸린 석재, 골목 틈 사이 빛줄기엔 도시의 감정이 결처럼 스며 있다. 특히 팔레르모항 주변의 그래피티 벽화는 저항의 흔적으로 팔레르모를 다시 보게 만든다. 이곳의 건축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돌위에 덧입힌 시간의 층위이며, 빛으로 되살아나는 기억의 파편이다. 종교 건물에 남은 아라베스크 문양, 로마네스크 외벽 뒤 이슬람 장식은 충돌 없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간다. 해가 기울며 아치 너머를 물들이는 빛, 마모된 대리석의 온기까지.
팔레르모는 눈이 아닌 감각으로 기억해야 할 도시다.
CATHEDRAL 산타 마리아 델로 스파시모
지붕 없는 고딕 성당
ADD Via dello Spasimo 35, 90133 Palermo (PA), Italy
PALACE 팔라초 데이 노르만니
아랍-노르만 양식이 공존하는 중세 궁전
ADD Piazza del Parlamento, 1,90129 Palermo (PA), Italy
MARKET 발라로 시장
팔레르모 대표 재래시장
ADD Via Chiappara Al Carmine, 23, 90134 Palermo (PA), Italy
STUDIO 에디치오니 프레카리에
감각적인 그래픽 작업물의 아트북 스튜디오
ADD Via Alessandro Paternostro, 75, 90133 Palermo (PA), Italy
DAY3 파도와 정원 사이, 도시의 숨결을 걷다
이제 여행자들은 단순한 풍경 소비를 넘어 지역 생태계와 공동체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여행 방식을 고민한다. 팔레르모와 그 주변 자연은 그러한 지속 가능한 여행을 실천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시칠리아의 자연은 북부 알프스나 토스카나의 부드러운 언덕과는 결이 다르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 바람에 깎인 석회암 지대, 손대지 않은 지중해 식생이 어우러진 이곳 풍경은 더 거칠고 원초적인 힘을 품고 있다. 북쪽으로 펼쳐진 짙푸른 티레니아해 너머, 석양빛에 물든 몬테 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가 도시를 감싸안듯 우뚝 솟아 있다. 이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팔레르모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일상의 배경이다. 팔레르모에서 자연을 체험하는 하이킹이나 어드벤처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섬의 정체성과 생태적 다양성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수단이다.
몬테 펠레그리노의 바위 절벽을 따라 걷다 보면 아라비아와 노르만의
역사가 스며든 순례자의 발자취를 마주하고, 야생 허브와 해풍에서 시칠리아 고유의 생태계를 체감하게 된다. 또 다른 길, 카포 갈로의 해안 절벽을 따라가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자연과 마주하며,
수천 년간 버텨온 섬의 생명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의 걷기는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 팔레르모라는 도시의 뿌리와 그 땅에서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서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CATHEDRAL 산타 카테리나 교회
르네상스와 바로크양식이 공존하는 가톨릭교회
ADD Piazza Bellini, 1, 90133 Palermo (PA), Italy
SHOPPING 갈레리아 델레 비토리에
노스탤지어 가득한 바와 카페가 즐비한 거리
ADD Via Maqueda, 301, 90133 Palermo (PA), Italy
PARK 카포 갈로
바다 절벽을 따라 걷는 트레일과 노을 명소
ADD 90151 Metropolitan City of Palermo, Italy
PARK 포로 이탈리코
해안 산책로가 펼쳐진 도심 속 공원
ADD Foro Italico Umberto I, 90133 Palermo (PA), It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