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를 위한 시골집
멜버른의 마운트 마세돈 힐 스테이션 타운에 위치한 아름다운 집. 2만평(66,115m2)의정원은 마세돈산 야생 숲과 연결되어 있다.
쿠트&코Coote&Co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샬럿 쿠트Charlotte Coote는 명망 높은 디자이너였던 아버지 존 쿠트John Coote를 따라 호주, 미국, 아일랜드 등에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던 곳은 10대 시절을 보낸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의 마운트 마세돈 힐 스테이션Mount Macedon Hill Stations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부유층이 광활한 풍경과 청량한 기후를 찾아 마세돈산 기슭에 별장형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이 지역은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과 영국 인도식 별장 스타일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물과 다양한 정원 풍경으로 호주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랜 해외 생활 후 멜버른으로 돌아온 샬럿은 우연히 친구로부터 마운트 마세돈 힐 스테이션에 매물이 하나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집은 1809년 호주 빅토리아 주지사 아이작 경Sir Isaac이 어린 두 딸 마거릿Margaret과 낸시Nancy를 위해 지은, ‘마르나니Marnanie’라는 별칭이 붙은 집이었다. 그녀가 살던 집 바로 옆, 담장 너머로 살펴보며 세 자녀와의 삶을 그려보던 동경의 보금자리와도 같은 곳.
샬럿은 숲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세 딸이 삶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야를 갖기를 바란다.
벽난로가 자리한 거실은 아쿠아 블루 컬러로 조화를 이룬다.
숲처럼 아늑한 가족의 품
마르나니에 마음이 끌린 데는 어린 세 딸, 실비Sylbi(11세), 프란체스카Francesca(9세), 다프네Daphne(8세)의 영향이 가장 컸다.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갖추는 것에 가치를 두기를 바랐으며, 교육과 성장에서 숲처럼 아늑한 가족 품에서 자라는 것이 어떤 명문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가치 있으리라는 신념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10대 시절 매일 아침 아버지와 산책하며 나누었던 소소한 이야기, 그 때의 기분과 감정, 가족과 자연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우리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어요. 시골로 이사하면서 이참에 일터도 집으로 옮기면 어떨까 생각했고, 남편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제 일을 도울 수 있게 되었죠.”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는 그녀의 생각은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옳았다는 확신을 준다. 세 딸은 하루 대부분을 반려견과 함께 밖에서 보낸다. 나무 그네를 타고, 시냇물을 건너고, 다람쥐를 따라다니며 자연과 교감한다. 야외 정원에는 아이들의 놀이 시설뿐만 아니라 수영장, 테니스 코트, 아치형 지붕이 달린 쉼터 등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장소가 자리 잡고 있다.
클래식한 몰딩 콘솔 위에는 에스티에 드 빌라트 Astier de Villatte의 꽃병,
로버트 힐리 데린 Robert Healy Delin의 작품이 걸려 있다.
주방 펜던트 조명은 앤티크, 의자는 토넷 제품이고, 가구는 직접 제작했다.
집 안에 들인 정원
물론 이 아늑한 터전이 샬럿이라는 개인과 가족, 취향을 만나 조화를 이루기까지는 제법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인테리어 작업을 준비하며 살펴보니 집 내부에 생각보다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화이트 컬러 벽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했고, 창문 크기도 아쉬웠다. 특히 부엌과 거실의 창문은 채광은 탁월했지만, 야외와의 연결감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문을 양쪽으로 여닫을 수 있는 대형 문으로 바꾸어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각 공간에 컬러를 칠하기로 했다. “인테리어 작업은 색상, 직물, 가구를 고르기 전에 이야기를 결정하는 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빈 공간에 서서 주변 풍경을 관찰하며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무엇이 보이나?’, ‘계절이 바뀌면 무엇이 보일까?’, ‘이 장소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하고요.” 그녀는 빈 주방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딕소니아 트리Dicksonia Tree, 고사리(Ferns), 몰리스 진달래(Mollis Azaleas) 등이 보였고, 계절에 따라 풍경의 색상이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바깥으로 나가 잎사귀를 한 움큼 주워 공간 바닥에 펼쳐놓고, 이와 어울리는 올리브 그린 컬러를 찾았다. 이런 방식으로 다이닝에 마젠타, 거실에 스카이 블루, 현관 복도에 크림색, 각 방에 블루, 그린, 핑크 등을 적용했다. 직물 패턴도 잎맥과 꽃잎에서 영감받아 선택했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욕실에는 나무 화분을 배치했다.
아이들의 주도적인 삶과 공간을 위해
인테리어 스타일은 고전적 건축미와 현대적 가구의 대비를 중심으로 잡았고, 골동품과 실용적인 모던 가구를 조화롭게 매치해 올드&뉴의 매력을 편리하고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설계했다. 골동품 중에는 아버지와 함께 제작한 의자, 아버지 유품에서 발견한 도자기 작품 등도 있다. 2층에는 부부 방과 동화 속 공주의 방 같은 세 딸의 방이 있다. 딸들의 방에는 은은한 핑크 컬러 벽과 화이트 컬러로 깔끔하게 정돈된 캐노피 침대가 놓여 있다. “어린 시절 제가 꿈꿨던 방의 모습이에요. 인형의 집도 직접 제작했고요. 큰 장난감은 없어요. 창밖의 정원이 아이들의 놀이터니까요.” 그녀는 아이들이 방에서 놀기보다 밖에서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침실에는 오로지 숙면에 필요한 요소만 배치하기로 했다. 아이 손이 닿는 높이에 걸린 그림이 유일하게 벽을 장식하고 있다. “제가 그랬듯 부모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면 아이도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좋아하는 자연, 디자인, 예술을 충분히 접하게 해주면 어느새 아이들도 자신만의 취향을 찾게 됩니다. 저 또한 아버지를 통해 인테리어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저희 부녀의 취향은 아주 달라요. 아이는 스스로 자라고, 부모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며 아이를 응원하는 것이 전부죠. 그런 의미에서 이 집은 아이들에게 매일 새로운 사건과 사고를 선물합니다.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어요.”
현관 철제 대문에서 포즈를 취한 가족. 남편 조디 테일러, 디자이너 샬럿 쿠트, 세 딸 프란체스카, 실비, 다프네, 그리고 블랙 리트리버 바비.
탁 트인 수영장이 보이는 실외 전경.
운명처럼 다가온 디자이너의 삶
샬럿 쿠트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20대 초부터 유럽에서 아버지 사업을 돕기 시작했으며, 2008년에는 독립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엄격한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일터에서는 주변 사람들조차 우리가 부녀관계인 줄 모를 만큼 공사 관계를 뚜렷이 구분하셨어요.” 샬럿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인테리어 디자인을 접했다. 아버지는 여러 나라로 이사할 때마다 직접 집을 고르고 공간 구조를 탈바꿈시키는 것은 물론, 공간에 필요한 가구와 소품을 디자인했다. 샬럿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살았던 아일랜드의 벨라몬트 포레스트 집, 18세기 영국 정통 조지안 스타일의 빌라에는 그렇게 시간에 따라 자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매번 가구가 달라졌는데, 아버지는 항상 미완성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늘 가구와 소품을 바꿔가며 어떤 것이 어울릴지 탐구하고 실험하셨으니까요. 그 덕에 저도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죠.” 그녀는 여섯 살 때 이미 자신이 아버지의 길을 이을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제 방이 생겼을 때, 아버지가 고른 벽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펑펑 울었어요. 그러자 아버지께서 직접 선택해보라며 두툼한 벽지 책자를 건네셨어요. 그때 직접 고른 벽지로 방의 무드가 전환되는 것을 보며 인테리어 디자인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죠.”
샬럿 쿠트의 스타일은 ‘클래식 컨템퍼러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녀는 클래식한 디자인에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요소를 가미해 프로젝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능하다. 가구와 조명을 직접 제작해 스타일을 뚜렷이 나타낸다. 데이비드 힉스David Hicks,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 시리 몸Syrie Maugham,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와 같은 디자이너들에 게서도 다양하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여행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요. 최근 인도 방문 때 아그라 요새를 둘러 보며 수백 년 된 힌두교와 이슬람 패턴을 발견했어요.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러그와 타일을 제작했고, 그 과정에서 모든 톤과 매너를 설정할 수 있었죠. 프로젝트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해결책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호주의 5월은 여름이 지나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변모하는, 짧지만 귀중한 순간. 요즘 부부는 세 딸에게 화양연화의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산책로를 가꾸느라 분주하다. 며칠 전, 모종삽을 든 채 어디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던 중 새로운 책 주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40년간 경력을 쌓으며 많은 색상, 직물, 스타일을 접했지만 자연은 여전히 샬럿에게 새로움을 제공하고 겸손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