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깃든 건축,
성지가 되다
건축의 경이와 종교의 경건이 공존하는 장소들.
순례자의 마음을 잠시 빌려, 여행을 이끄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산티아고에 핀 신성한 연꽃
BAHÁ'Í TEMPLE
바하이 신앙의 사원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규범처럼 따른다.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바하이 사원은 9개의 입구와 9개의 면으로 이루어지고, 돔형 지붕이 상징처럼 얹혀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바하이 사원은 그 규범을 따르면서도 창의성이 돋보이는 종교 건축의 형태를 쟁취했다. 캐나다에서 활동한 국제적 건축가 시아막 하리리Siamak Hariri의 영감과 현대 건축의 테크닉을 적극 수용한 덕분이다. 바람에 날리는 돛처럼 유연한 9개의 아치형 구조물로 이뤄진 외관은 연꽃을 연상시킨다. 건물을 덮은 1천1백29개의 반투명 주조 유리를 만들어내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자연광을 받을 때는 하얀색으로 반짝이고 해가 진 후에는 주광색으로 물들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티아고가 훤히 내다보이는 이 사원은 2016년에 완공되자마자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신앙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ADD Av. Diag. Las Torres 2000, Peñalolén, Región Metropolitana, Chile
CONTACT www.bahai.cl/temploba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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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크리스토발 언덕(San Cristobal Hill)은 산티아고를 대표하는 조망 명소이자 칠레의 천주교 성지로 불린다. 남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코스타네라 센터Costanera Center와 산티아고 시내, 저 멀리 안데스산맥까지 사방에 펼쳐진다. 멋진 숏폼 영상을 찍고 싶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볼 것.
경건한 축복의 존재감, 모스크 사원
SANCAKLAR MOSQUE
‘현대의 가장 놀라운 종교적 창조물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산카클라 모스크는 스스로를 감추면서 더 크게 드러낸다. 이스탄불 외곽 뷔윅체크메제Büyükçekmece의 고요한 초원에 들어서 있으며, 오직 작은 미너렛minaret 첨탑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뿐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무한한 종교의 품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 방문하는 이는 무뚝뚝하고 낮은 석조 캐노피 아래로 입장하고 나서야 이곳이 모스크라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종교의 본질에 집중하는, 새로운 형태의 모스크에 신도들은 찬사로 화답했다. 메카 방향으로 자리한 벽, 그 안으로 들어오는 자연 채광은 어두운 예배실에 경건한 축복을 내리는 듯 눈부신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마도 오래전 인류 또한 이 같은 곳에서 신을 경배했으리라. 자연의 일부가 된 산카클라 모스크에서 비로소 인간은 신을 향해 자신을 낮춘다.
ADD Karağaç Mah., Sırtköy Çiftliği Mevkii G 84 Bulvarı, 34500 Büyükçekmece, Türkiye
CONTACT www.instagram.com/sancaklarca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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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짧은 시간밖에 머물 수 없다면 갈라타 탑(Galata Kulesi)을 목적지로 설정하자. 1348년 요새의 망루로 지은 약 67m 높이의 탑은 동서양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유산이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와 보스포루스해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해 질 무렵 방문한다면 황홀한 조망을 감상할 수 있을 터.
소리를 삼킨 침묵의 예배당
KAMPPI CHAPEL
아르누보부터 신고전주의까지 놀랄 만큼 다양한 건축양식을 아우르는 장엄한 건축물은 헬싱키를 둘러싼, 차분하면서도 다채로운 자연에 절묘하게 녹아들어 새로운 풍경을 빚어낸다. 도심 한복판 나린카토리Narinkkatori 광장에 자리한 캄피 예배당도 그중 하나다. 헬싱키의 건축 사무소 K2S가 설계한 캄피 예배당은 헬싱키가 ‘2012년 세계 디자인 수도’에 선정된 것을 기념해 지은 건축물이다. 초현대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의 곡선형 외관부터 시선을 압도한다. 더불어 11.5m의 거대한 높이에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데, 건물 내·외부에 가문비나무, 물푸레나무 등을 사용해 핀란드의 자연을 녹여냈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바깥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고요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어 ‘침묵의 교회’로도 불린다. 예배당 문은 모두에게 개방돼 있어 누구나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완벽한 정적 속으로 빠져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ADD Simonkatu 7, Narinkkatori, 00100 Helsinki, Finland
CONTACT www.kampinkappeli.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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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 페리로 15분 거리에 있는 해양 요새 수오멘린나Suomenlinna에 들러보자. 18세기 중엽 스웨덴인이 건설한 이곳은 다리로 연결된 6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옛 성벽과 벙커, 막사 등이 퍼져 있는데, 차량 통행을 금지해 한나절 정도 머물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현실과 환상 사이, 고속도로 교회
515 AUTOBAHNKIRCHE
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u¨nden주에 속한 산악 마을 안데르Andeer 인근. 장크트 마르그레텐St. Margrethen에서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 A13을 타고 달리다 보면 백색 면으로 이루어진 비현실적인 건축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초원이 펼쳐진 평화로운 초록 풍광을 배경으로 서 있는 515 아우토반키르헤다. 2019년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드 뫼론Herzog&de Meuron이 설계한 고속도로 예배당은 일대에 있는 어느 교회와도 견줄 수 없다.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일체의 표식을 생략하고 오로지 건축물과 주변을 둘러싼 자연으로만 공간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 4개의 벽이 서로 기댄 열린 구조로 설계한 예배당은 탁 트인 주변 경관과 고속도로의 소음까지 내부로 끌어들여 보는 이가 감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ADD A13 motorway near Andeer, Switzerland
CONTACT www.herzogdemeuron.com/projects/515autobahnki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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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어 도심에서 산악 케이블카를 타고 브람브뤼에슈Brambru¨esch 고원에 오르면 아름다운 목초지와 숨이 탁 트이는 경치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산악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서 즐겨볼 것.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완성작
BAHÁ'Í TEMPLE
프랑스 리옹의 외곽 마을, 에뵈Éveux의 언덕에서 그윽하게 평원을 내려다보는 라 투레트. 이 건축물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유럽에서 완성한 마지막 작업이자, 모더니즘 수도원의 이상향 같은 곳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침묵과 평화를 수도사에게 제공하는 것”을 라 투레트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그는 수도사가 실제로 거주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매우 계산적인 공간을 구현했다. 신장 183cm의 건장한 남성을 기준 삼아 공간을 디자인했고 1백 개의 방, 도서관, 식당, 예배실, 회랑 등으로 수도원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이제 라 투레트는 노년의 수도사처럼 완숙하다. 완공 후 60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수도원 안에는 여전히 선한 빛과 부드러운 풍경이 드나든다. 거친 콘크리트와 울퉁불퉁한 돌, 무감한 목재가 오랫동안 빛과 풍경을 흡수해 오늘날의 건축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침묵을 지키며, 그 누구보다 평화롭게.
ADD 760, route de La Tourette - 69210 Éveux, France
CONTACT www.couventdelatourett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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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뵈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을 달리면 피르미니Firminy에 다다른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소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오직 르 코르뷔지에 때문. 그는 1950년대 피르미니의 신규 건축물을 설계했다. 스타디움, 주거 단지, 문화센터, 수영장, 교회를 포함한 대규모 복합 단지였다. 대부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완공됐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과 감정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마리오 보타가 새긴 빛과 그림자
SAN GIOVANNI BATTISTA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의 알프스 산골 마을 모뇨Mogno.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이 변방까지 여행자가 찾아오는 이유는 돌로 지은 한 교회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건축 세계에서 전환기를 마련한 산 조반니 바티스타 교회다. 건축가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가던 보타는 1986년 눈사태로 무너진 17세기 교회 부지에 굳건하고 신성한 공간을 세우기로 마음먹는다. 1996년 교회가 완공됐을 무렵 종교 건축에 대한 보타의 해석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도전적이었다. 새로운 바티스타 교회는 사각형 바닥에서 시작해 경사진 원형의 유리 지붕으로 마무리되고, 단 하나의 창문도 갖추지 않았다. 지역에서 채굴되는 회색 화강암과 흰색 대리석을 체스 판처럼 교차하며 쌓아 올린 조적 구조는 정교하다 못해 감탄을 이끌어낸다. 천장을 통해 들어온 빛의 명암이 실내를 날카롭게 구분할 때면 마음속 깊이 엄숙한 감동이 차오른다.
ADD 6696 Mogno, Switzerland
CONTACT www.chiesadimogno.c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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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헤르만 헤세는 티치노주 몬타뇰라Montagnola의 아름다운 빌라에서 대표작을 집필했다. 그의 거주지와 작업실은 오늘날 헤르만 헤세 박물관(Museo Hermann Hesse Montagnola)으로 탈바꿈해 작가의 일생과 유물을 전시한다. 몬타뇰라의 조용한 골목길과 루가노 호숫가를 산책하면, 헤세에게 영감을 준 스위스 자연의 풍요로움을 마주할 수 있다.
writerHur Taewoo〈피치 바이 피치 매거진〉 편집장
intern editorKang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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