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예술적 서사
‘유명한 미술가=거장’ 또는 ‘실험적 미술=정치적 미술’이라는 공식을 잠시 제쳐둘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우센버그는 순수예술 영역의 안팎에서 이미 관습화 된 재현 방식과 실용화된 기술을 전략적으로 재조립함으로써 예술이 개인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이라는 영웅화된 서사를 명민하게 비틀곤 했다. 종종 그가 1950년대 초 미국 형식주의가 주창한 회화 매체의 순수성과 위대한 창조자로서의 예술가라는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품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구분되는 이유다.
추상회화의 대표 주자 윌렘 드 쿠닝의 드로잉을 지운 후 액자에 끼운 ‘지워진 드 쿠닝 드로잉(Erased de Kooning Drawing)’(1953), 자신이 실제 사용하던 베개와 이불에 유화물감을 덕지덕지 칠한 후 벽에 걸어 전시했던 ‘침대(Bed)’(1955),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며 주운 캔버스, 고무 신발 굽, 테니스공, 나무판자 등 발견된 오브제로 받침대를 꾸미고, 그 위에 길거리에서 주운 염소 박제에 폐타이어를 끼워 세워놓은 ‘모노 그램Monogram’ (1955~1959)이 대표적인 예다.
다시 말해 라우센버그의 초기 작업은 아무것이나 주워 모아 만든 ‘쓰레기 미학(junk aesthetics)’ 또는 이것저것 조잡하게 갖다 붙였다고 해서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이라는 형식주의 용어를 통해 이해되기도 하지만, 실은 미술계 내부자들의 지적인 농담으로 가득 차있다. 특히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다다Dada 예술운동 의 명칭이 쓰인 나무판자를 물감을 뒤집어쓴 염소가 밟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모노그램’을 주목해보자. 받침대로 활용한 나무판자들은 유럽 아방가르드의 저문 영광을, 그 위에 놓인 염소는 우상화된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비록 라우센버그를 비롯한 이른바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검소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일상용품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들만이 이해 하는 미술 계보를 시각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ARTIST PROFILEROBERT RAUSCHENBERG, 1925~20081925년 10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출생, 60여 년간 팝아트 작가이자 화가로 활동했다. 발견된 오브제와 액션 페인팅 을 결합한 컴바인 페인팅을 창조하고, 새로운 소재와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 정신을 펼쳤다. |
writerJon Ihnmi 메인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 초빙 교수editorKim Min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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