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대기만성(大器晩成)형으로 현존하는 조각가 중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2010년 98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1911년 크리스마스 날, 파리에서 테피스트리(tapestry 양탄자처럼 직조된 걸개그림) 화상의 딸로 태어난 부르주아는 예민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가정교사와 불륜관계에 있던 바람기 많은 아버지를 지켜보며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은 부르주아에게 지워지지 않는 배신의 상처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남아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테마를 형성한다. 이런 불안을 떨쳐버리려는 듯, 예측 가능한 수리의 세계에 흥미를 느껴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공부했던 부르주아는 곧 수학적 관념의 한계를 깨닫고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했다. 세 아이를 낳으며 한 가정의 주부로서, 그리고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의 조각전을 시작으로 한 작가로서 꾸준히 작품세계를 이어온 그녀는 1970년대 급속도로 불어 닥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미술계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다룬 작품 <아버지의 파괴>(1974)로 새롭게 평가된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1980년대부터 인체를 분절, 파편화하고 재조립하는 다양한 실험을 해왔으며, 특히 감각 기관에 기반을 두고 있는 눈, 귀, 손, 발과 같은 특정 인체 부분을 재현과 추상으로 결합시킨 조각 작업을 주로 선보였다. 그의 작품에 표현된 사람의 신체는 다양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통합체로 지각되며, 그 속에서 각 부분적 대상은 특정한 인물을 암시한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자신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를 투영하는 매개체로서 눈을 소재로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EYE BENCHES III> 역시 물체로서의 눈과 사물의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인식의 눈 그리고 세상과의 교류, 소유로서의 응시 등을 포괄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지은(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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