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Do Ho Suh, 1962-)는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회화를, 그리고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하였다. 동서양의 매체와 방법론을 섭렵한 그는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어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서도호가 추구하는 끈질긴 화두는 거대한 집단 속의 개인, 그리고 그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정체성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과 타협, 눈에 보이지 않는 간극들이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그의 대표작 <Some/One>은 개인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정보들, 예를 들면 주민등록번호 같은 일련번호나 혈액형이 각인된 금속조각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갑옷이었다. 일련번호로 박제된 한 인간의 자아와 이들로 뒤덮인 거대한 집단에서 벌어지는 개인적 투쟁의 아비규환은 전체라는 획일적인 힘에 의해 침묵하게 된다. “군대는 개개 군인들의 신체가 사라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런 군사문화의 영향일까? 인식표를 연상시키는 금속조각들은 결국 갑옷을 이루는 일개 부속에 지나지 않는다. 수 천, 수 만 개의 인식표가 의미하는 개인들은 ‘갑옷’이 상징하는 하나의 ‘영웅’ 혹은 하나의 ‘신념’을 위해 별다른 감회 없이 희생된다. 이런 구조적 폭력이 주는 섬뜩함은 깔개 형태의 작품 <Doormat: Welcome>에서 관람객을 공범으로 만들었다. 역시 수천의 작은 인물군상들로 이뤄진 깔개는 다름 아닌 ‘나’(관람객)의 발을 떠받치고 있다.
<Cause and Effect> 역시 이런 인간 군상들로 이루어진 천장 설치물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인물들이 서로의 무등을 타고 연결되어 늘어져있다. 이들 중 하나라도 흐트러지거나 빠져나올 수 없이 밀착된 단단한 유대는 어떠한 남다름이나 이견(異見)의 가능성도 부정되는 획일화의 공포를 보여준다. 작은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반투명한 장막은 아름답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는 이들의 관계는 내가 너를 걸머지고, 또한 너의 어깨에 의지해야 하는 불가분의 관계가 주는 공동체적 운명의 무거움을 내포하고 있다.
이지은(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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